2021. 11. 26(금) 새벽기도회
본문 - 창세기 16:7-16
<본문>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2)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본문 해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만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권준 목사) 약속하신 분이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이루십니다. 우리의 지혜와 우리의 힘이 얼마나 보탬이 될지 모르나, 우리는 그저 기대는 인생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고 옳아 보이고, 넓은 길 같아 보여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뤄가실 일을 일점일획이라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어제 보신대로 이 기다림을 내려놓고, 내 방법을 붙잡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약속의 자녀를 안겨 줄 것 같았던 ‘하갈’로부터 ‘멸시’를 당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실상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통로가 아닙니다. 도리어 불화의 싹만 될 뿐입니다. 아무리 약속을 믿고 있다 하고, 붙잡는다고 자부해도, 내 주장과 생각이 가미된 약속은, 하나님께서 주실 열매를 맺어줄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뤄보려는 모든 시도는 고통만 남길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향해서 걸어가야 할 아브람과 사래를 결코 놓지 않습니다. 7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사자’가 도망간 ‘하갈’을 찾아내십니다. 사라는 자기 꾀에 넘어졌고, 또 하갈은 스스로 높아져서 아브람과 함께 축복의 통로가 될 사래를 멸시하고 저주했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인간의 실수와 헛된 선택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합력하여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뤄가십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우리가 어떤 실수를 해도 하나님께서 다 협력해서 일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사래의 실패를 어떻게 다루십니까? 9절,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하갈이 이 말씀대로 다시 사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작정 돌려보내시지 않고, ‘이스마엘’을 약속으로 주시는데, ‘하갈’의 고통을 듣고 있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사실, ‘하갈’이 받은 약속은 겉으로 보면, 아브람에게 약속한 자녀의 번성과 같은 축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과 전혀 거리가 멉니다. 12절을 보시면, 이스마엘은, 그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들나귀’ 같은 인생이 됩니다(대조, 창12:1~3). 큰 민족을 이루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과 반복하고 대항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럼에도 ‘하갈’은 이 약속을 붙잡고 사래 곁으로 복종하고자 돌아갑니다.
이런 하갈을 보면서 아브람과 사래가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가 어디겠습니까? 약속 아닌 약속을 붙잡고도 이렇게 돌아와 복종하는데, 아브람과 사래는 누구도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내 잔꾀와 방법은 내려놓고, 약속의 말씀에 복종하고 기다리는 자리로 돌아가는 겁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도망 나간 하갈을 찾아내셨고, 아브람과 사래 곁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만, 낸 맘같지 않는 현실에서 조급함이 차오르고 기다리다 못해서 일을 그르치고 저지를 때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내 꾀에 스스로 넘어져서 괜스레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갈’을 학대하듯이, 내가 저질러 놓은 문제와 갈등에 분노하고 있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데, 하갈과 같은 상황, 내 실수와 내 잔꾀의 실패를 우리 곁에 붙여 두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길이 아닌 곳을 고집하는 나를 향한 고통을 품고, 우리의 고집을 꺾으시고, 약속으로 이끌어 가시려는 사랑입니다. 길이 아닌 곳에서 참된 길 위에 서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약속대로 이루실 하나님만을 붙잡는 믿음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이고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현실에만 함몰 되지 않습니다.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약속대로 이루실 하나님이 나의 현실이며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
1. 믿음과 현실 속에서 때때마다 갈등하며 주께서 원하시는 자리에서 멀어지는 나의 마음과 삶을 붙잡아 주옵소서!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단하시고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 안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인내함으로 주께 복종케 하옵소서!
3. (주보 기도제목) 선교사들이 어려운 상황 중에도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