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6(화) 새벽기도
본문 - 사도행전 11:19~30
<본문>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본문해설>
1.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와 주님의 함께 하심
어제 11장 1절에서 18절의 말씀을 살폈다. 11장 1절의 내용 다시 보자.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누가는 베드로가 복음을 전한 것을 두고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으로 말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기관이 어디인가를 보여준다. 더 이상 대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율법 교사 등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 1절의 누가의 기록이 보여주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누구를 복음의 전달자로 삼으셨는가?이다. 우리 시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기관으로서의 교회이다. 그리고 1절이 보여주는 두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기관으로서의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기관으로서 교회 이방인들에게로 가야 하였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여야 하였다.
이 맥락에서 오늘 말씀 19절과 20절을 보라. 19절을 보면 흩어진 자들이 이방지역이라 할 수 있는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20절을 보면구브로와 구레네 등 일부 사람들이 헬라 사람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였다. 11장 1절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도구가 된 자들이 있었다.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오늘 말씀이 보여준다.
이렇게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나타났을 때에 주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21절을 보는 것처럼 주님께서 당신의 전능한 손을 펴셨다. 주님께서 당신의 전능한 손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들과 함께 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확증이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와 주님께서 함께하셨다.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복음의 기관으로서 사명을 다할 때에 주님께서 함께 하셨다.
마태복음 28장의 내용도 우리들이 잘 알고 있다. 우리 예수님 ‘가라’ 말씀하셨고 ‘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어라’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에 따라 행하는 사도와 교회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주님의 함께 하심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를 통하여 나타난다. 교회가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때에 그 교회를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이 보여진다는 뜻이다.
2. 주님의 함께 하심의 결과
주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함께 하셨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다. 믿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을 주님께로 바꾸었다. 믿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믿음의 참된 모습이 삶의 방향의 변화이다. 주님께만 소망이 있으니 주님께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주님께로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지 우리들은 질문할 수 있다. 누가는 이어지는 27절에서 30절로 보여준다.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들이 안디옥에 갔다. 그리고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에서 간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아가보가 예언한대로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있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으니 주님께서 돌이킨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29절을 보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였다. 누가의 기록을 보라!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라고 여겼다. 육체로는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생각하며, 형제라고 여겼다.
요점은 세워지는 교회의 복음적 삶이다. 주님께로 삶의 방향을 바꾼 교회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는다. 믿음의 형제들을 위하여 살아간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것을 아니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향하여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모습을 오늘 우리들은 접한다.
<기도제목>
1. 복음을 맡은 교회를 통하여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교인들이 많아지게 하소서.
2. 교회가 맡겨진 복음의 일을 성실히 감당하여 주님의 손이 교회와 함께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3. 교회공동기도제목(화) - 부모님과 교회의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