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6(화) 새벽기도회
본문 – 에스라 8:24-36
<본문>
24 그 때에 내가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우고
25 그들에게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그 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그릇들을 달아서 주었으니
26 내가 달아서 그들 손에 준 것은 은이 육백오십 달란트요 은 그릇이 백 달란트요 금이 백 달란트며
27 또 금잔이 스무 개라 그 무게는 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 같이 보배로운 놋 그릇이 두 개라
28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그릇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
29 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3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그릇을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가려 하여 그 무게대로 받으니라
31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32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삼 일 간 머물고
33 제사일에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은과 금과 그릇을 달아서 제사장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의 손에 넘기니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과 레위 사람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과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가 함께 있어
34 모든 것을 다 세고 달아 보고 그 무게의 총량을 그 때에 기록하였느니라
35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두 마리요 또 숫양이 아흔여섯 마리요 어린 양이 일흔일곱 마리요 또 속죄제의 숫염소가 열두 마리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36 무리가 또 왕의 조서를 왕의 총독들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 주매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느니라
<본문 해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먼저 성전을 재건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는 따르는 삶은 전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 말씀에 무감각했고, 이방 여인들과 혼인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정체성이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있는 에스라를 부르십니다.
어제 본문에서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특별히 성전의 온전한 회복과 말씀 회복을 위해서, 레위인들을 설득해서 기어코 귀환 행렬에 포함 시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0절 까지를 보면, 에스라는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옮겨가기 위해서 제사장의 우두머리 중에서 열두 명의 사람을 따로 세웁니다.
이렇게 출발하는 2차 귀환 여정은 약 4개월이 걸렸고, 실제 거리는 1,500km 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들과 노예들까지 약 일만 명 정도의 인원이 동참했습니다. 당시에 길고 먼 거리 여행에서 노상강도들을 만나는 일은 다반사였는데, 그래서 31절에도 보시면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위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는 바사 왕의 호의와 군사와 마병을 구하지 않습니다. 22절에서 보신 것처럼 이스라엘의 도움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바벨론 땅에서 그리고 왕에게 조차 항상 고백했던 에스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사 왕의 보병과 마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겸비함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31절을 보시면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에스라가 준비하고 걸어온 모든 길의 결론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을 입은 ‘형통’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형통’은 그저 눈 앞에 있는 문제 해결의 결과로 끝나기 위해서 주어진 ‘형통’이 아닙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너진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을 간구했습니다. 특별 35절에서 보신 것처럼,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열 두 마리 숫염소를 포함한 제물까지 옮겨 왔습니다. 여기 ‘온 이스라엘’에 누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예루살렘에 돌아 왔지만, 말씀과 상관없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자들이 포함되어 있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지만, 역시나 선민사상에 사로 잡혀서 바벨론 포로들과 자신들을 구분 짓는 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언약의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벨론 포로를 자처한 이스라엘 온 족속을 말합니다.
결국 에스라가 하나님의 형통을 덧입은 이유는, 나 자신만 은혜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가는 길에 하나님의 도움을 잠시 끌어 오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 형통의 길을 구하고 하나님의 선한 도움의 손길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이런 에스라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온 이스라엘’을 위한 예물과 속죄 제사 제물을 가져와서 하나님의 용서의 예배를 올려 드리는데, 지금 이 예배와 제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포로로 보내셨지만 다시금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약속과 이 땅을 고치시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라의 형통을 통해서 먼저 돌아왔던 자들과 남아 있던 자들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다시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자기 백성에게 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형통해야 할 이유와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각양의 모습으로 형통의 길을 허락하시고 선한 손의 도움으로 이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형통을 구하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에 우리 자신을 의탁하는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물론 우리는 개인적으로 때와 시기와 부르심의 모양은 다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교회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의 각 지체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래서 손이 형통해야 할 이유, 발이 형통해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눈과 귀와 코와 입과 각 지체가 형통해야 할 이유는 한 몸의 유익임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한 도움의 손길이 항상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개인의 형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우리 각자에게 때때마다 형통의 은혜를 허락하시는지, 그 목적지를 분명히 확인하고 주께서 허락하신 형통의 자리에서 주의 뜻과 온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기>
1. 개인의 형통 자체에 함몰되어있는 삶을 내려놓고, 우리 개인의 형통 너머의 목적지로 이끄시는 하나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며 쓰임 받는 우리 자신과 온 교회가 되게 하소서!
2. (주보 기도제목)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 성도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