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5(금)
본문: 히브리서 3:7-19
<본문>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해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민수기 13-14장에 기록된 12 정탐꾼 이야기입니다. 12명의 정탐꾼 중 갈렙과 여호수아 단 두 사람만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신실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10명의 사람들은 가나안 족속 앞에서 자신들은 마치 메뚜기 떼와 같다고 말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앞서 본문의 배경은 민수기 13-14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히브리서 기자는 정작 히브리서를 기록할 때는 민수기를 인용한 것이 아니고 시편 95:7-11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3-14장을 인용하면 되는데 왜 굳이 시편 95편을 인용한 것일까요?
7절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먼저 “오늘 너희가”는 시편 95편 7절에서 그대로 사용된 표현입니다. 즉, 시편 95편의 시대의 백성들을 부르는 표현입니다.
민수기 13-14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렙과 여호수아 말고는 그 누구도 안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시편 95편에서는 다릅니다.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습니다. 시편 95편은 아마도 포로기 혹은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기록한 시편으로 추측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포로기까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시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시편 95편을 인용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시편 95편의 시대부터 히브리서가 기록되는 그 시기, 히브리서가 기록된 그 이후의 시기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안식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동시에 본문은 ‘오늘’의 우리에게 한 가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의 길을 걸을 것인지 우리의 믿음의 신실함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12-13절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우리에게는 아직 주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그 남아있는 시간 동안에 하나님을 시험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모습을 보일 것입니까? 그렇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서로 권면하라’.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를 돌아보고, 함께 믿음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우리의 형제들을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나 혼자만을 부르시지 않고, 우리를 부르신 이유.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가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9절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이스라엘은 신실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이 말해주는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반면교사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안식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이끌어주십니다.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분, 바로 모세보다 더 큰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 3:1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가 참된 평안,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가 믿는 도리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붙잡고 있을 때, 우리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영원한 안식을, 구원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삶, 신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삶은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께서 신실하게 우리를 붙잡고 계심을 믿고, 그 사실을 흔들리는 형제들에게 전해주며, 함께 믿음을 굳건히 세워가는 일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신실하게 믿고 지켜가는 대흥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 우리를 신실하게 붙드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형제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서로 격려하며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도록 하소서.
2) 한국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시고, 바른 말씀을 붙잡아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