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1월 16일(목) 새벽기도
본문: 로마서 3:21-31
<본문>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해설>
함께 읽은 로마서의 말씀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의는 하나님과 피조물이 정상적인 관계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심판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우리 스스로가 잘 선택할 수 있고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요. 특히 믿음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난 주에도 대구에서 신천지가 10명이 넘는 인원들을 동원해서 모임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요,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잘못된 사상에 빠져들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잘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는 것과 바른 교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은 바른 판단을 하는 기준이,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존재에게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분이 척도가 되시고 기준이 되십니다.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척도이고, 기준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물론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생각할 수 있다고 하여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섬기도록 창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떠났습니다. 그것이 악이고 죄이지요. 그래서 로마서 3:23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으니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사랑’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인한 현상, 효과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사랑이 넘치는지 식어버렸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나에게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현상, 효과들을 보고서 알수 있습니다. 로마서 1:29은 그 죄의 현상과 효과들을 말씀합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난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죄의 전형적인 모습들입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고통의 문제, 죽음의 문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잘못된 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신과 냉대. 이 모든 것이 죄와 관계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정말 죄가 없는 깨끗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영원한 진노와 저주 아래에서 살아가가야 했습니다. 비참과 저주 가운데서 살아야 했습니다. 죄로 인해 죽고 망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해결할수 있는 길을 보이셨습니다. 구속자가 나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고 죗값을 치루어서 대신 저주받고, 대신 징계 받고, 대신 죄인이 되어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 구속자를 믿음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고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어떤 행동과 대가를 지불해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값없이 은혜로 주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심지어 이 구속의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으로 나아간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27절은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입니다. 다른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의롭게 될 수도 없습니다.
이 진리를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인지, 의롭게 되었는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의 구주로 고백하는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나아가는지? 우리의 모습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러한지 어떻게 알 수 있지요? 31절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새언약은 율법을 파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새언약 시대인 지금도 여전히 계명과 율법의 정신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법을 기쁘게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 복을 누리는 교우 여려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되어지는 것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그러니 주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2. 주보에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입시를 치르는 자녀들이 준비한 기량을 발휘하도록 평안과 지혜를 허락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