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4(화)
갈라디아서 3장 26절~4장 11절(신p.306)
염덕균 목사
<본문>
◎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해설>
어제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율법을 가리켜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초등교사’란 로마 시대 당시 노예의 직급 중 하나로 주인의 자녀가 16살이 되기 전까지 그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역할을 맡은 자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초등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녀들을 인도하여 ‘전문 교사’에게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말을 통해서 율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율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의 죄를 깨닫고 우리 자신에게 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를 이 죄와 비참으로부터 건져내 주실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인도하는 것임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렇게 율법의 인도를 받아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된 자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 지를 말해줍니다. 26-27절 말씀인데요.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율법의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온 자들, 그렇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종의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이 4장 1-2절에서 주어지고 있습니다. 주인의 자녀가 어렸을 때, 따라서 아직 유업을 이을 자로 인정함을 받기 전까지는 그를 맡은 후견인과 청지기, 즉 ‘초등 교사’의 돌봄 아래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라서 ‘유업을 이을 자’로 인정함을 받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초등 교사’의 돌봄을 받지 않고, 어엿한 ‘아들’로 인정함을 받습니다.
그렇게 ‘아들’로 인정함을 받은 자, 그렇게 ‘유업을 이을 자’로 드러난 자는 그 자격을 얻은 자로서의 ‘옷’을 입습니다. 즉, ‘옷을 입는다’라는 말은 그에 합당한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표현을 통해서 크게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을 받고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서, 율법의 의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을 받았음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미 아들로 인정함을 받아 그리스도로 옷 입었으니, 이미 옷을 입은 자로서의 특권을 온전히 누리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왕의 의복’을 입혀 주셨습니다. 왕의 의복을 입혀 주셨다는 것은 이제 왕의 의복을 입은 자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살아갈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본성은 우리가 ‘이미 입은’ 왕의 의복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왕의 자녀로서의 행위가 어색하고 종으로 지낼 당시의 행위가 익숙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자녀 삼으셨고 우리에게 ‘왕의 의복’을 입혀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종의 행위’에 익숙하며, 우리가 이미 ‘자녀’로 인정함을 받았음을 잊고, 여전히 자녀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마치 ‘왕의 의복’을 입은 왕의 자녀가 자신이 왕의 자녀라는 것을 잊고 왕궁의 마당을 쓸고, 물동이를 이고, 왕의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바울 사도가 보기에 당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이와 같았습니다. 이 안타까움에 바울 사도는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바울 사도의 이 안타까움의 호소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행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확인케 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우리의 ‘존재’를 확인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에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기 긍정’과 ‘자기 의’가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귀결됩니다. 하나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자녀 됨’을 과시하고 드러내며 근거 없는 확신과 자랑 가운데서 교만에 빠져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모습에 끊임없이 실망하며 실패와 좌절, 패배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교회에서 활발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비난과 정죄, 그로 인해 생긴 상처만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온유하고 점잔하며 신중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라 나가고자 하는 노력과 시도를 기울이지 않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모두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인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을 통과하여 ‘그리스도께로’ 나아온 자들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우리의 자녀 됨을 확인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가운데서 그리스도께로 나아온 자들입니다. 그 율법의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옷 입은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자녀 됨의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확고한 기초와 터 위에서 ‘그리스도 옷 입은 자’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율법의 종이 아니라, 복음으로 말미암은 자유 가운데 겸손함과 담대함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우리의 자녀 됨의 근거를, 우리의 ‘행위’에서 찾지 않고,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여, 겸손함과 담대함으로 살아가도록.
2. [주보]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지혜와 힘을 더하여 주셔서, 직무를 신실하게 잘 감당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