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9월 15일(금)
잠언 21:1-12 (구약 933)
<본문>
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
7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8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10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11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12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해설>
우리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심을 믿습니다(잠16:9). 또한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하신 말씀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말씀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분의 왕에게도 확실하게 적용됨을 말씀합니다.
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습니다. 마치 능숙한 농부가
물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게 여호와께서 왕을 인도하십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다스려 가십니다.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시며 인도해 가십니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불편해 합니다. 자기 삶에 너무 깊숙하게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불편해 합니다. 자유를 빼앗긴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무 생각도, 감정도, 의지도 없는 삐에로 같이
자기를 대하신다고 오해합니다. 자기 뜻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참 자유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게 될 때 우리는 가장 지극한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의 참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기가 세우신 왕을 그분의 지혜와 뜻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자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뜻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의 왕은 반드시 자신을 불러 세워 주신 분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물어야 합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그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그럴듯하게 꾸민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자신에게
맡겨 주신 직무에 대한 바른 마음을 여호와께서 확실하게 아십니다. 화려하게 꾸민 겉모습으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으나 결코 여호와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 나라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우리 또한 거짓
화려함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자랑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를
불러 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은 그것을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 표현합니다.
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이는 특히 왕의 중요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판단하고
결정하여 그분의 공의와 정의를 드러내는 것이 왕의 매우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부름 받은 자는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을 예배를 통해 드러내야 합니다.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예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드러내는 삶의 예배.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내야 할 예배와 삶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배하는 우리는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을 그 마음에 가득 담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교만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악인이 형통하다’는 거짓에 속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부러워하거나 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조차 우리 왕을 향한 불경입니다. 무례함이고, 경외하지 않음 입니다. 교만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것은 우리
왕과 그들을 비교하고, 저울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5절 말씀처럼 오늘 하루도 부지런함으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을 감당합니다.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의와
정의를 행하시는 우리 왕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처럼 조급하여 속이지 않습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며 이는 쉬 사라져 버리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왕을 따르는 우리 삶은 반드시 그 흔적,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걸음을 통해 우리 왕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7절 말씀과 같이 악인의 강포, 폭력을 따르지 않습니다. 조금 더디고, 덜 가지고, 많이 손해 보더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의와
정의를 따릅니다. 깨끗한 자가 걸어가는 곧은 길로 나아갑니다(8절).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을 더 즐거워합니다(9절). “다투는 여인”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경외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자기 만족과 즐거움을 기준으로 그것을 판단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꾸미고 자랑하려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따라 살아가려 하는 자와 다툽니다. 우리는 그러한 다툼이 있는 큰 집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집을 감찰하십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아니라 그 안에 채워져 있는 지혜를 보시고 교훈과 지식을 보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집이, 우리의 삶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와 지식으로. 여호와를 참으로
예배하는 공의와 정의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기도제목>
1.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바른 예배의 삶을 살게 하시고, 악인의 형통과 강포를 부러워하거나 따르지 않고 오직 지혜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게 하소서.
2.
<주보 기도제목> 위정자들이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게 하시며, 생활과 경제의 고통이 사라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