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31(금)
마태복음 8장 1-13절(신p.11)
염덕균 목사
<본문>
◎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해설>
오늘 본문은 산상설교를 마치고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치유해 주시는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한 사람은 ‘나병환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백부장’입니다. 언 듯 보기에는 두 사람은 너무나도 다른 부류의 사람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한 사람은 ‘나병환자’로, 당시 사람들로부터 ‘부정하다’고 여겨지며, 공동체로부터 격리 된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백부장’으로, 말 그대로 거느리고 있는 군사만 50에서 100명이나 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또한 이 로마 백부장은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는데요. 병행 본문인 누가복음 7장 말씀을 보면, 유대 장로들이 이 로마 백부장을 대신하여 예수님께 찾아와 백부장의 요구를 들어주실 것을 요청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때 이 유대 장로들이 예수님께 하는 말이,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눅 7:4-5)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 장로들이, 로마 백부장을 위하여, 이렇게 까지나 나서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모습은, 이 백부장이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얼마나 사랑과 존중을 받고 있었는 지를 잘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두 부류’의 인물, ‘나병환자’와 ‘로마 백부장’은 너무나도 다른 부류의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까지나 다른 부류로 여겨지는 두 사람이, 실상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첫째, 두 사람은 모두 ‘고칠 수 없는 병’ 앞에서 철저히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나병’을 고침 받지 못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지 못하는, ‘무능함’ 앞에 마주서 있습니다.
둘째, 두 사람은 모두 ‘한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자기 자신과 자기 하인의 질병이 치유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마 8:2) 지금 이 나병환자의 요청은 “예수님! 저를 고쳐주십시요!”가 아닙니다. 지금 이 나병환자의 요청에는 예수님에 관한 ‘신앙고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지금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나병환자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는 분으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즉, 나병환자의 이 고백에는, 예수님께서 ‘뜻하신 바를 이루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인의 질병을 고쳐주시기 요청하는 백부장의 요청에도 포함된 고백입니다.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 달라는 백부장의 요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만류합니다. 이때 백부장이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마 8:8)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굳이 자신의 집까지 찾아오실 필요가 없다고 만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이 말에는 어떠한 고백이 들어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권능’이 있다는 고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행하실 수 있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나아가 ‘말씀하시는 바’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즉, 나병환자와 로마 백부장은 그저 단순히 자신과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는 요청만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모두 예수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이들은 바로 이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로마 백부장이 보여준 이 고백을 들으시고, 매우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자손들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8:10). 백부장이 보여준 ‘신앙고백’을 매우 귀한 것으로 여겨주셨습니다.
나병환자도, 백부장도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지위나 조건에 의해 거절당하거나, 인정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부정하게 여김 받으며, 유대 사회로부터 격리를 당하는 나병 환자라 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를 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해 회당을 지어주고, 유대 장로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다고 하여 예수님께서 그 백부장의 요청에 응답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사람의 간구에 응답하신 것은, 그들이 ‘질병’이라고 하는 문제 앞에서 자신들의 ‘무능함’을 절감하는 가운데,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으로 ‘예수님’을 찾아 나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올 때, 막연한 생각과 바램을 가지고 나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해 ‘원하시는 바를 이루실 수 있는 분’, ‘말씀하시는 대로 이루어지시는 분’,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라는 믿음과 고백으로 나아왔던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고백을 받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이 두 사람은, 그저 자기 자신과 자기 하인의 병을 고침 받은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향한 자신들의 믿음과 고백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병고침’을 받는 것을 통해 확인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들과 같은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관자이자, 주권자로 인정하며 그분께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내어 맡겨드리고 있습니까? 그 믿음과 그 고백이, 우리를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의 자리로 기꺼이 나아가도록 만들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1. 재산의 유무, 사회적 지위의 고저, 지식의 많고 적음에 매이고 연연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과 한계를 기꺼이 인정하며, 그리스도를 찾고 의지하는 우리가 되도록.
2.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바른 신앙고백 위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누리는 삶이 되도록.
3. [주보] 혼란 가운데 있는 나라가 질서와 안정을 속히 되찾게 하시고, 위정자들이 정파 논리를 추구하기에 앞서, 민생을 살피고 돌보아 나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