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1월 7일(금)
로마서
2:12-16
<본문>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해설>
바울은 지금 사람을 두 부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보시면 율법 없이 범죄한 자, 그리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 없이 범죄한 사람은 율법이 없는 것 때문에 망하고, 또한
율법이 있고 범죄한 사람은 그 율법을 근거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즉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반드시 멸망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율법이 없이 범죄한 사람은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사람은 구약의 율법을 받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그 선언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3절에서 바울은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 말씀합니다. 확실히 이 말씀은 율법을 가졌다고 말하는 유대인을 향해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2장 1절 말씀에서
율법을 가진 유대인을 향해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판단’이라는
이 단어는 12절에 ‘심판’과
같은 단어입니다. 유대인이 먼저 율법을 받은 것은 참으로 은혜이고 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듣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 주신 것이죠. 그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율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판단하며 또 그 판단을 통해 자기를 자랑하도록 하기 위해 주신 도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13절의 말씀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은 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살피고 또 그 율법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가진 것 자체를 자랑하고
또한 그 율법을 가지지 못한 자들을 판단했다고 바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분명 율법을 듣는 다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택하셔서 사랑하신 자기 백성에게만 율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라는 외침으로 나타나는 율법에 순종하라는 모세의
명령은 참으로 이스라엘에게 은혜이며 복입니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 명령에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확실히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이 은혜와
복을 모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고, 또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참된 방법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율법을 통해 그 사실을 듣고 배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았고 나아가 사랑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은혜와 복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말씀대로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참으로 주신 그 율법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듣고 아는 것도 참으로 복된 일이나 듣는 것만이 아니라 참으로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것에 실패한 역사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 겸손해야 할 것을
지금 말씀합니다. 율법을 소유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기 자랑과 자기가 이방인보다 좀 더 낫다는 우월함이
아니라 결코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또한 모든 이방인 앞에서 겸손해야 함을 바울은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4절과 15절은 마치 덧붙여진 것처럼 바울이 이어서 말씀합니다. 14절과 15절 말씀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에게서 오히려 율법의 일을
행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이방인들에게
양심이라는 것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이방인에게서 때로는 율법의 일이 나타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어떤 일이 이방인에게 나타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지금 이 말씀을 언급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이방인들 역시 자기들이 행한 율법의 일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이방인이 자기
양심을 따라 율법의 일을 행한다 할지라도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거나 또한 언제나 항상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히려 그 양심으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합니다. 즉 율법이 있는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자기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바울은 지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6절에서 바울은 이 모든 것이 결국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에 모두가 확실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복음이 모든 사람의 교만과 죄를 드러낼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숨겨 놓았던 우리의 모든 죄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이 가장 먼저 행하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복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결단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또 때로는 우리의 양심을 따라 행한 그 어떠한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먼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전한 그 복음을 받은 우리들, 그 복음 앞에서 또한
율법 앞에서 언제나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겸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언제나 또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늘 언제나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결단코 우리의 행위로 우리가 행한 어떤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온전히
듣고 깨달음으로 언제나 복음의 내용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하며 신뢰하는 삶을 살겠습니다는 정직한 고백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믿음의 내용이며, 또한 그 믿음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내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받았고, 또한 참으로 우리가 복음을 받았다면 모든 삶의 태도와 모습을 겸손으로 나타냅시다. 참으로 우리의 믿음이 겸손함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 참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졌기에 믿음을 가졌기에, 그
겸손함으로 우리의 믿음과 또한 우리에게 주신 그 복음을 자랑하며 복음의 내용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며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주신 복음으로 우리가 온전히 율법에 순종할 수 없는 자임을 깨닫게 하시고, 겸손히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소서.
2. <주보 기도제목> 직분자들이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고, 구역장들과 권찰들에게
섬김과 사랑의 능력을 더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