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1월 8일(토)
로마서 2:17-24
<본문>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해설>
바울은 하나님의 율법을 먼저 받은 유대인의 놀라운 특권에 대해 말씀합니다.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의지한다는 것은 율법을 신뢰하며 율법 안에 거한다는 의미입니다.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것.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이며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의 밝은 빛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길을
걸어갈 수 없는 맹인과 같은 자들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죄의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의 지식과 진리로 어리석은 자의 교사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선생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확실히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특권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일입니다. 자기 지혜나 지식이 아닙니다.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주시는 이런 놀라운 특권에 감사해야 합니다. 더불어 겸손해야 합니다. 율법을 자기를 자랑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올바르게 듣고 배운 자는 언제나 그 율법 앞에서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나아가 누군가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안내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말씀대로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라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특권을 받은 유대인들,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유대인들, 들은 그런 놀라운 특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온전히 깨닫거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율법을 먼저 받은 이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잘못과 가장
큰 실수는 그 말씀으로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1절부터 22절까지의 말씀에서 그 사실을 바울은 지적합니다.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1절은 ‘그러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무엇 때문에’, ‘왜’라는 의미의 접속사입니다. 그렇게 선하고 아름다운 율법을 받았는데 “왜? 무엇 때문에?”라고
묻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가르치는 네가 왜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냐? 십계명을 통해 도둑질하지 말라고 듣고 배운 네가 왜 도둑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고 듣고 배운 네가 왜 간음하느냐고 묻습니다. 더욱이 우상을 가증하게 여기며 미워하는 그들이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느냐고 묻습니다. 신전은 우상을 섬기는 신전입니다. 그
신전에는 팔면 이득이 되는 값비싼 물건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범죄가 흔하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유대인도 신전의 물건을 훔쳐서 이득을 보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우상을 가증스럽다 말하는 그들이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것,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묻습니다.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으로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하는 자가 자기
자신에게 율법을 가르치지 않는 것, 심지어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씀합니다.
바울은 이 모든 행위의 결과가
23절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또한 24절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 이 율법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겠다. 그들에게 주신 율법과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을
자랑하도록 부름 받은 유대인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부름 받은 그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율법의 내용과 또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고
바울은 그렇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을
먼저 받은 유대인들의 가장 큰 잘못이 무엇입니까?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행위로 마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고, 또 그 율법을 가지지 못한 자들에 비해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스스로 교만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율법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의 모습과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가장 놀라운 복음을 받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라는 가장 좋은
선물을 받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해당되는 질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은혜로 받은 그 복음의 말씀을 따라
어떻게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있습니까? 어떻게 이 말씀이 우리의 삶에게 주어졌는지, 또 그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중요한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고민하며 돌아오고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시며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겠다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놀라운 복음을 주시며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너무나 크고 놀라운 은혜이며 특권입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생각을 통해 하나님 영광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복음을
받은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은 자로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말하고 너무나 쉽게 행동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말과 행동은 참으로
무거워야 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놀라운 복음을 받은 자로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며 또 나아가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시간 가장 먼저 말씀 앞에서
그 율법 앞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겸손히 우리
자신이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봄으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따라 우리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복음, 우리에게 주신
그 복음의 영광을 온전히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냄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이 예수님 안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백하며 순종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2. <주보 기도제목> 주일 성수할 수 있는 믿음과 여건을 주시고, 예배로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누리게 하소서.
3. <경동노회 어린이대회> 모든 말과 몸짓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시간이 되도록. 경쟁과
시기, 질투가 아니라 언약의 자녀들이 말씀을 듣고 배움으로 믿음이 자라나는 시간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