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1월 12일(수) 새벽기도
본문: 로마서 3:9-20
<본문>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해설>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은혜와 특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항변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은 불공평하다고까지 말합니다. 심지어 이들은, 악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을 드러낸다고도 말합니다. 3:8입니다.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바울 선생은 이들의 논리를 정확하게 반박합니다. 유대인들의 말이 옳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본질적으로 공의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말씀을 먼저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그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궤변으로 자신들의 태도를 정당화하는 이들은 정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선생은 질책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3:9은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유대인이나 그렇지 않은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3:10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앞서 2장에서 이 말씀을 선생은 이미 강조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14장 인용입니다. 14:1-3까지 봅시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왜 하나님이 없다 말하지요? 왜 그 행실이 가증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까?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디를 봐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하고 싶은대로, 살고 싶은대로 삽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그런 삶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그 사람을 시편의 기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매우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1:26-31을 보면 이들이 행하는 악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 죄들이 매우 평범하게 보이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군 수군하고, 시기하고 비방하고 분쟁하고 미워하는 것,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특별하게 정직하고 선한 일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법도 잘 지킨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바울 선생은 시편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 로마서 3:13-18절까지를 봅시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그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고 우리나 다 똑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입니다. 죄 아래에 있었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었습니다.
율법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거울과 같습니다. 율법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습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를 깨닫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 율법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을 막아 하나님 앞에서 변명하지 못하게 합니다(3:19).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됩니다(3:22). 이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동일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나은 것이 없습니다. 선생은 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면서, 우리의 삶을 살피게 합니다.
유대인들이 맡았던 말씀, 오늘 우리가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 그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말씀을 따라 신실하게 그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죄와 악함으로부터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결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말씀을 따라 먼저 살아가고, 그래서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결코 나을 것이 없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말씀으로 삶을 살피고 경주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부르심을 따라 부지런하게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의 내용이 아무리 선하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가 우리의 믿음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율법을 통해 스스로를 비추어보는 삶,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의존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주님을 의지하고, 말씀이 가르치는 길을 따라 걸어가기를 소망하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만을 바라게 하소서. 말씀에 신실하게 반응하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2. 주보에 있는 기도제목입니다. 수술과 입원 중인 교우들이 잘 치료 받고 회복되게 하시고, 가족에게도 힘과 위로를 주소서.
3. 목요일, 내일(11/13) 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지혜와 분별력을 주시고 준비한대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