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2월 2일(화) 새벽기도
본문: 로마서 9:30-10:13
<본문>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해설>
로마서 9장 30절부터 10장 13절까지의 말씀은 “누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입니다. 바울은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나란히 놓고, 두 길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의를 얻은 길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와 자기 의에 매달리다가 결국 그리스도께 부딪혀 넘어지는 길입니다.
먼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9:30). 이방인은 율법도, 조상도, 언약도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의를 얻기 위해 준비된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음에서 난 의”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의를, 이방인들이 오직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시고, 먼저 부르셨기 때문에 이방인이 의를 얻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어떠합니까.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9:31).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았고, 언약 안에 있었고, 나름대로 율법을 지키려고 애쓴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진단합니다. 이유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32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의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자기 행위와 자기 의에 기대어 서려고 했기 때문에, 정작 하나님이 두신 구원의 돌, 곧 그리스도께 부딪혀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옛날 이스라엘만을 향한 진단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안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벽기도를 나오고, 예배를 지키고, 봉사하고, 직분을 감당하며 나름대로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스라엘을 향해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10:2)라고 말합니다. 열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열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의, 곧 그리스도의 의를 붙드는 열심인지, 아니면 내 의를 세우는 열심인지가 본질입니다.
3절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십자가와 부활의 길, 곧 그리스도의 의를 주시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길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율법을 지켜서 얻어 내는 의, 자기 몫의 의를 세우려고 힘썼습니다. 결국 어떤 평가를 받습니까.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단지 무엇을 더 많이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 의, 내 공로, 내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마련하신 의 앞에 자신을 낮추어 맡기는 믿음의 복종입니다.
4절은 이 단락의 중심 선언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율법의 마침이라는 말은 율법이 쓸모 없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율법이 가리키던 목표와 완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이렇게 행하면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은 그 요구를 온전히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우리의 한계 앞에 세우고, “내 힘으로는 의에 이를 수 없다”는 자리까지 끌고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지점에서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제 의는 율법을 행한 대가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더 분명하게 대비합니다. 5절에서 모세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라고 말합니다. 율법의 방식은 분명합니다. 행하면 살고, 어기면 죽습니다.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 이하에서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구원은, 우리가 하늘 끝까지 올라가 무엇을 가져와야 얻는 구원이 아닙니다. 깊은 무저갱으로 내려가 어떤 비밀한 체험을 얻어야 하는 구원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신 것을, 우리 입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복음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그 완성된 구원이 “믿음의 말씀”으로 우리 곁에, 우리 교회에, 우리의 귀와 입과 마음 가까이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9절과 10절은 구원의 길을 아주 단순하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나를 위한 구원을 이미 완성하셨다는 사실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그 믿음을 숨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사는 삶입니다. 속으로만 알고 있는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말과 선택과 관계 속에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드러내며 사는 삶입니다.
11절부터 13절까지는 이 구원이 얼마나 넓게 열려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가르칩니다. 첫째, 나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 과거가 어떠하든, 오늘 나의 형편이 어떠하든, 나의 실패와 허물이 아무리 깊어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둘째, 우리 주변의 누구도 복음에서 제외된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에 익숙한 사람만이 아니라, 전혀 교회를 몰랐던 이방인 같은 사람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에 이릅니다.
이제 말씀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나는 지금 “믿음에서 난 의”를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의”를 세우려고 애쓰며 살고 있습니까. 예배를 지키고, 봉사하고, 기도하는 것은 매우 귀한 열심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이 나를 의롭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의 사역과 교회 생활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도, 가정을 세우는 것도, 교회를 세우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해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근거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결코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우리에게 내려오셨고, 부활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셨고, 지금은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의 입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고,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신뢰하며, 행위가 아니라 은혜에 기대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열심이 더 깊은 복음의 깨달음과 연결되게 하시고, 자기 의를 세우려는 모든 마음을 꺾으시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며 사는 믿음을 주시기를,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복음의 길을 평생 붙들고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제목>
1. <말씀을 기억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며 사는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옵소서.
2. <주보 기도제목> 새가족과 전입한 교우들이 교회에 잘 정착하게 하시고, 말씀의 교제로까지 자라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