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5(월)
디모데전서 3장 1-13절(신약p.338)
염덕균 목사
<본문>
◎ 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해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는 자와
집사의 직분을 얻으려는 자들,
곧 교회의 직분을 감당하려는 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언급합니다.
우선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자질이 요구됩니까?
1) 책망할 것이 없으며,
2)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3) 절제하며 신중하고 단정하며,
4) 나그네를 대접하며,
5) 가르치기를 잘하며,
6) 술을 즐기지 않으며,
7) 구타하지 않으며,
8)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9)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10) 자기 집을 잘 다스리며,
11)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니어야 하며,
12) 외인, 곧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여야 합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 제시하는
감독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그 내용과 목록이 굉장히 많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까다롭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열 되어 있는 자질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금 이 시대가 말하는
소위 ‘능력과 스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성품과 인격’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바울 사도가 제시하는 목록은,
언변이 뛰어나다든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호소력을 지녔다든지,
조직과 기관을 잘 갖추고 운영하는
경영 능력이 아닙니다.
지금 바울 사도가 감독에게 요구하는 자질은,
그가 속한 삶의 자리,
곧 가정과 일터와 일상의 자리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인격과 성품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제시하는 이 목록들은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훨씬 더 까다롭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등급을 매기는 일에 익숙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교회들이 목회자를 청빙할 때도,
학위가 있는지, 유학 경험이 있는지, 언변이 뛰어난지,
조직을 운영하고 이끄는
노하우나 방침을 지니고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거나, 제시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목회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방향으로 스스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길러나가는 쪽으로
생각과 마음을 모으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가 말하는 바와 같이
감독에게 요구되는 자질,
나아가 교회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정량화 하고, 수치화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그가 속해 있는 일상의 자리에서
‘성품과 인격’을 통해서
확인 받고, 검증 받아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뒤에 이어지는
집사의 직분을 받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직분을 감당한다는 것은
일꾼으로서의 ‘능력’이 요구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교회의 직분자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은
스스로가 먼저 복음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인격과 성품에 열매가 맺혀진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바로 이 직분을 감당하려는 이들을 향하여
가장 먼저 무엇이라 말을 합니까?
오늘 본문 1절 말씀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딤전 3:1)
교회의 직분자가 되려는 자,
그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모습은
바로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직분 자체’, ‘칭호 자체’, ‘직함 자체’가
추구의 대상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직분에는 ‘명예직’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언제나 ‘직무’와 함께 갑니다.
‘직무’를 내려놓는 순간,
‘직분’도 함께 멈추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직분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그 ‘선한 일’을 감당하기 위한
사모함과 갈망과 열정을 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피 값 주고 사신 교회와 지체를,
아끼고 사랑하며 돌보고 싶은 마음이,
직분을 감당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의 교회가 직면한
가장 안타깝고 슬픈 일 중 하나는,
바로 이 ‘선한 일’을 사모하는 직분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모습은,
‘선한 일’에 대한 사모함이 없이,
그저 신앙의 경력과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점점 들어가다 보니,
직분을 받고 싶어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인격과 성품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자가,
직분의 자리에 마음을 두거나,
심지어 직분자로 선출되는 모습이 첫 번째입니다.
이어서 두 번째 모습은,
‘선한 일’에 대한 사모함이 없기 때문에,
직분 자체도 받지 않으려는 모습입니다.
내 자신과 내 가족, 내 일터 하나
건사하고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벅찬데,
굳이 힘들고 수고롭게
직분과 그 직분에 요구되는 섬김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선한 일을 사모하는 자’의 부재가,
이런 안타까운 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과연 우리 자신은 어떤 자들입니까?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에 합당하게
‘선한 일을 향한 사모함’을 지니고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성품과 인격’의 열매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주도록 만들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1. 복음의 은혜를 경험한 자로서, ‘선한 일’을 향한 ‘사모함’을 지니게 하시고, 나아가 그것이 우리 일상의 ‘인격의 열매’로 드러날 수 있도록.
2. [주보] 새롭게 맞이한 한해를, 하나님의 안에서 잘 계획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며 살아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