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1월 10일(토) 새벽기도
본문: 디모데전서 6:3-10
[본문] 딤전 6:3-10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해설]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이유는 1장 3절에 나온 것처럼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디모데를 남겨두었는데, 오늘 읽은 본문에서 그 다른 교훈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3절이죠.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여기서 “누구든지”는 그 집단 가운데 속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 사람들이 다르게 가르치고 있다는 겁니다. 무엇과 다르게 가르칩니까? 바른 말입니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다르게 가르친다는 뜻이죠. 특별히 ‘바른’이라는 단어는 ‘건강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건강한 말입니다. 우리를 살리게 만듭니다. 유익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다른 교훈은 어떤 말입니까?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독의 말입니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것을 가르칩니다. 심지어 교만해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가르치는데 무엇이 건강하게 만들겠습니까? 그리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좋아한다는 말은 그것을 선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어의 느낌을 살리면 그것에 병적으로 빠져있다는 뜻입니다. 3절의 건강함과 반대로 병에 걸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병에 걸린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벌입니까? “변론과 언쟁을” 냅니다.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을” 나게 만들며, 다툼이 일어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의 마음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원어의 뉘앙스를 살리자면 진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르침과 말 다툼이 그들 자신을 바른 말씀으로부터 차단해버리고, 빼앗기고 박탈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은 이미 빼앗겼는데, 마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이 사람들을 거짓 교사라고 말합니다.
그럼 이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을 할까요? 진리를 빼앗기고,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왜 나서서 가르칠까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을 경건한 사람으로 포장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은 다음 경제적인 후원을 얻으려 했습니다. 이들의 동기는 분명히 돈이었습니다. 돈과 명예가 함께 오기 때문에 이렇게 가르치는 일에 나서서 했다는 것이죠.
우리는 어떻습니까? 가르치는 것에 국한하지 말고, 우리의 섬김과 봉사에 있어서 동기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동기는 바른 말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돈과 명예에 기초를 둡니까? 경건함을 이익의 방도, 곧 섬김과 수고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은 그것이 우리에게 병들게 하고, 진리를 박탈당하고, 빼앗기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죠.
거기에 대해 바울은 6절에서 대답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했던 그 말을 차용해서, 경건을 통해 우리는 물질적 이익을 뛰어넘는 ‘큰 이익’을 누린다고 말합니다. 그 큰 이익이 무엇입니까? 탐욕이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한 만족입니다. 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까요? 적은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자족할까요?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충족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7절과 8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이 세상을 영원의 관점 아래 둡니다. 이 세상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임시적이라고 말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하겠다고 합니다. 다른 것에 목숨을 걸지 않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족하겠다 합니다. 그러나 부하려 하는 사람 곧 금전적인 동기가 되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시험과 올무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그것이 좋아 보여서 갔지만 결국 그것이 자신을 해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엇이라 결론을 냅니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동기를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이 경고를 잘 새겨서 우리의 동기가 바른 말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따르고,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믿고,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곧 12절 말씀처럼 믿음의 선한 싸움이죠. 그 싸움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립니까? 영생이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 교회 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제목]
1.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동기가 예수님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오기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소서.
2. <주보 기도제목> 예배와 말씀으로 인한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여 함게 모이는 자리에 열심을 내게 하여 주소서.
3. 전국어린이대회 7시 출발, 차드 단기선교팀이 밤 11시에 교회에 도착합니다. 무사히 잘 돌아올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