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1월 21일(수) 새벽기도
본문: 요한복음 2:13-25
설교자: 권준 목사
<본문>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해설>
우리 주님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 첫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위해 두었던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담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인데요. 이 표적을 통해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선언하십니다. 옛 언약 시대를 지나 새 언약 시대가 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에서도 주님은 새 시대의 표적을 보이십니다. 유월절 절기를 맞아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런데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지요. 성전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요. 가장 안쪽은 유대인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고, 가운데는 유대인 여자들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바깥쪽 부분은 이방인들도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렇다 해서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고, 할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바깥쪽 부분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소와 양은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동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은 동물을 직접 가져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성전에서 파는 동물들을 사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내는 돈은 당대에 일반적으로 통용하던 화폐와는 달랐기 때문에, 성전에서 환전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동물을 팔고, 환전하는 곳이 있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전 안에서 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일들을 성전 안에서 하도록 허용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이방인들도 성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십니다. 15절을 보시면, 주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절입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시편 69:9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17절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성전을 향한 사랑 곧 하나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원수들이 예수님을 삼키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삼킨다’는 말은 예수님이 속죄의 제물로 죽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연결되고, 옛 성전이 예수님으로 성취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니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예수님께 따집니다(2:18). 그래서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당신의 몸이 참된 성전이라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성전이시지요?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집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표입니다. 그런데 단지 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미 보았지요. 1:11에서 ‘자기 땅에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이 친히 우리 가운데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표인 성전의 의미가 완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자들은, 이제 성전으로 가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무슨 표적을 보이겠느냐?”고 묻자 2:19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겁니다. 그래서 2:21은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3:20을 보시면 이렇게 말하지요.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성전을 그저 건물로만 이해한 유대인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땅에 속한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주님이 죽으시고 살아나신 후에야 알게 됩니다(2:22).
많은 사람들은 주님이 행하신 이적과 표적을 보고서 믿었습니다(2:22). 그러나 그들의 믿음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가치가 있거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증언을 받으실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2:25). 게다가 그들의 믿음도 온전한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의 모습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땅의 일에만 매여 살아가면 하늘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바르게 고백하지 못했던 당대 유대인들과 같은 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고백하지 않으면,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더욱이 표적이나 이적에만 매달리는 믿음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니 말씀이 가르치는 주님께로 나아가서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보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신실하게 붙잡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성전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우리를 위해 참된 성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고백하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2. 주보에 있는 기도제목입니다.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는 근심과 육체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이 속히 회복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