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사는 삶(Daily devotion) - 5월 18일(금)
<생각하기>
충동적이고 감상적인 용서를 남발하는 일은 사람의 인격을 도리어 너저분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은 기본적으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당장에야 무슨 좋은 말로 금칠을 하고 자신을 천사처럼 드러내더라도 나중에 다시 빌미를 삼을 게 뻔하다면 누가 그런 사람과 얽히고 싶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용서(지우개)한 게 아니라 보관해 둔 겁니다. 소위 건수나 약점을 하나 잡아 둔 거예요. 잊은 게 아닙니다. 그러니 이런 자에게서 하나님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이런 식의 용서로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한 우리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드러날 수 있냐 말이지요. 그러니 용서, 가볍게 취급할 일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하고 살펴서 용서하는 자도, 용서받는 자도 영적으로 크게 성숙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묵상하기>
겔 18:28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 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기도하기>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행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사랑이 흘러 넘쳐 우리도 사랑하는 주님의 제자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기에 회개하는 형제를 용서하게 하시고, 사랑하기에 회개치 않는 형제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사랑하기에 때론 그 영혼을 얻기 위해 꾸지람과 권면도 하게 하시고, 사랑하기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가 회개하기를 기다리게 하소서.
사랑으로 행하는 용서로 인해 용서하는 자도, 용서 받는 자도, 그리고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자도...... 그리스도를 닮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순종하기>
교회의 시벌과 해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직권으로 치리회가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다룰 때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의 영광과 그 엄중함을 생각하여 신중하고 공의롭게 처리해야 하며,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벌을 했다면 더 이상 교회와 교인들은 그 죄에 대해 생각지 말고, 사랑과 용서로 그를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자비로우심은 교회 내의 죄를 다룰 때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죄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형제를 어떻게 대하는 가를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죄를 다루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결국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이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생각해야 하며, 너무 쉽게 감정적으로 남발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기에 죄 가운데 있는 형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 감정적으로 충동적인 용서를 행하고선, 마음 속 한 켠에 이 사실을 붙잡고 그에게서 후일에 이익이나 좋은 것을 얻으려는, 혹은 이미 그에게서 얻은 이익이나 관계 때문에 대충 넘어가려는 태도가 우리에게 있지는 않은가요? 이것이 진정한 형제 사랑인지 오늘 하루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2. 회개한 형제에게 대해 공적으로 치리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용서가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개인적으론 용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마음 속에 움켜쥐고 미워하는 마음과 되갚아주고자 하는 복수심이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것이 진정한 형제 사랑인지 오늘 하루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