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0(수) 새벽기도회
본문: 창세기 3장 8-15절
<본문>
◎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본문 해설>
오늘 본문은 아담이 범죄한 결과 사람에게 나타난 일들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아담이 범죄한 결과로, 사람은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창 3:7). 이에 사람은 스스로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나뭇잎'으로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사람이 범죄하여 일어난 두 번째 결과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 시선을 피하여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동산의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창 3:8).
사람이 번죄하여 일어난 세 번째 결과는, 다른 사람과 '분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그의 아내를 주셨을 때에,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고백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범죄한 이후에 그는, "저 여자가 내게 열매를 주어서 내가 먹었습니다"(창 3:12)라는 말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결과들은, 사실 하나의 사실로부터 기인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 '하나님과의 교제의 상실'이라고 하는 것이 궁극적 원인입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귐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생명력을 공급 받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사람은 '결핍'이 없이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귐의 '단절'이라고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사람은 근원적인 '결핍'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근원적인 결핍이 위와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은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더 소유하고, 움켜쥐고,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인 돈, 물질, 명예, 칭찬과 인정, 젊음, 권력 등과 같이 다양한 것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견제와 경계'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지요.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존중 받거나 인정 받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시시 때때로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지요. 특히 우리는 '은밀한 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입니다. 사람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남들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고 여기며 행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우리는 '손바닦으로 하늘을 가린 채', 온갖 가식과 위선과 자기 기만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사람이 범죄하여 타락한 결과가 이런 모습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러한 죄의 결과들이 극복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추구하던 모습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과 그분이 공급하시는 은혜로 만족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견제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형제와 자매, 나의 동역자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동행하심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도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죄'가 극복 된 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죄'가 극복 된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나타내고 보여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죄'가 극복된 신자로서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에는 이런 '죄'가 극복된 공동체로서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혹은 이런 '신자'와 '교회'로서의 모습을 기대하고 갈망하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1. 죄가 우리에게 가져온 결과들이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하고, 우리의 삶을 잘 살필 수 있도록.
2. 죄를 극복한 개인과 공동체로서, 신자와 교회의 모습을 바르게 추구하고 세워나갈 수 있도록.
3. [주보 기도제목] 연약한 성도들을 살피며 서로 돌아보고 짐을 나누어 지는 교회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