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8(금) 새벽기도회
본문: 창세기 38장 15-30절
<본문>
◎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본문 해설>
오늘 본문은 어제에 이어서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장자 엘과 차남 오난이 모두 다말과 엮인 이후에 여호와께 벌을 받아 죽었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아들 셀라에게 다말을 내어 주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핑계 거리를 생각합니다. "셀라가 아직 장성하지 않았으니, 지금 당장 너를 셀라에게 줄 수 없다." "따라서 셀라가 장성한 후에 다말 너를 셀라에게 보내 줄 테니, 그때까지는 친정 아버지 집에 머무르며 과부로서의 정절을 지키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유다는 셀라가 장성하지 않았단 명분으로 다말을 그의 친정 집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사실 유다의 마음은 다말을 셋째 셀라에게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심지어 셀라가 장성한 이후에도 다말을 데리러 가지 않은 채 잊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유다는 가까이 지내던 친구 히라와 함께 양털을 깎기 위해서 딤나에 갔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말에게 이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말은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딤나로 가는 길목인 에나임 문에서 유다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마침 유다가 그곳을 지나고 있었고, 유다는 얼굴을 너울로 가린 다말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를 창녀로 여겨 염소 한 마리를 값으로 주고 관계 맺기를 요구합니다.
이때 다말은 유다에게 담보물을 요청했는데요.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담보물로 요청했습니다. 당시에 도장, 끈, 지팡이는 누군가의 신분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물건들이었는데요. 지금의 주민등록증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유다는 도장, 끈, 지팡이를 담보물로 주고 자기 며느리 다말과 동침합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다말이 임신하게 되지요.
두 사람이 동침한 이후 세 달 정도 지나자 유다에게 소식이 전해집니다. 과부인 그의 며느리가 행음하여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유다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 그 행음한 며느리 다말을 끌어내어 불살라 죽일 것이라고 말하지요. 그렇게 끌려 가던 중에 다말은 자신이 유다와 동침할 때 담보물로 받았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내놓습니다. 바로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그들 앞에 내놓았던 것이지요.
그 담보물들을 본 유다는 그것들이 바로 자신의 것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지요. 오늘 본문 26절 말씀인데요.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다의 이 고백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유다의 입자에서는 얼마든지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다말에게 떠넘길 수 있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앞뒤 사정이 어떻든 간에 유다가 다말과 관계 맺는 과정에서 다말이 유다를 속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말이 내미는 담보물을 보며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단순히 자신이 창녀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 자신의 며느리와 동침했다는 행음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다말을 돌아보지 않고, 다말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 했던 것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 들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유다의 모습은 우리가 잘 아는 누군가와 유사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한 이름인 ‘다윗’입니다.
다말의 행음과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유다는 다말을 불살라 죽이라 명합니다. 이 모습은 사무엘하 12장에서 나단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던 다윗이 보인 반응과 매우 유사합니다.
나단은, 소와 양이 매우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기 가축은 잡지 않고, 양 한 마리 밖에 없는 이웃의 아끼는 양을 빼앗아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다윗은 크게 분노합니다. 그런 사람은 마땅히 죽여야 한다며 크게 분노하지요.
그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새바를 범한 다윗이 바로 그 사람이라 말한 것이지요.
나단 선지자의 이 지적을 들은 다윗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 다윗의 반응을 기록한 것이 회개의 시로 알려진 시편 51편이지요.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들은 다윗은 단순히 자신이 밧새바를 범했다는 사실, 우리야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 그런 구체적 악행들에 대해서만 죄를 인정하거나 고백하지 않지요.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자로서 마땅히 드러내야 할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소망이 없는 자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인 이유는 단순히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여서만은 아니지요. 다윗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어느 방면으로나 허물과 죄가 없는 완벽한 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윗이 위대한 왕인 이유는,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리로 나아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것은 유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38장이 보여주는 유다의 모습은, 죄와 허물로 가득한 자의 모습이지요. 그러나 유다는 다말을 통해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며느리 다말이 자신을 속였다고 죄를 덮어 씌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과오를 인정하고 그녀를 옳다 여깁니다.
그렇게 유다는 다말을 죽이지 않고 살립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말이 낳은 두 아들을 자신의 족보에 이름을 올립니다. 그중 한 아이의 이름이 베레스 인데요. 훗날 이 베레스의 혈통에서 방금 우리가 살펴본 위대한 다윗이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허물이 없는 완벽한 자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혹 죄와 허물이 있더라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돌이키는 자, 그렇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리로 나아오는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스스로의 모습과 욕망을 정직하게 돌아보거나 살피려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좋은 이야기, 긍정적인 이야기, 격려가 되는 이야기를 선호합니다. 우리가 잘하는 것만 칭찬해 주고,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하지 언급하지 않아주길 원합니다.
그렇게 죄와 마주하지 않으니, 죄를 인정할 일도 없고, 죄를 인정하는 일이 없으니, 죄인을 용납하시고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경험할 일이 없습니다.
혹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아 살피고 있습니까? 그렇게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자복하는 가운데, 그 죄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까? 이런 죄와 허물 많은 우리를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사모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기도제목>
1. 말씀 앞에 정직하게 스스로의 모습을 살피고, 나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도록.
2. 죄 사함의 은혜와 죄인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고 동참하는 우리가 되도록.
3. [주보기도제목] 코로나 중에도 교회의 모든 기관과 부서들이 어려움 없이 모이고, 사역들을 잘 진행해 나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