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9(목) 새벽기도
본문 - 사무엘하 14:18-33
설교자 - 권준 목사
<본문>
18 왕이 그 여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바라노니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내게 숨기지 말라 여인이 이르되 내 주 왕은 말씀하옵소서
19 왕이 이르되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 주 왕의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옮길 자가 없으리이다 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령하였고 그가 이 모든 말을 왕의 여종의 입에 넣어 주었사오니
20 이는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바꾸려 하여 이렇게 함이니이다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 하니라
21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23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24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27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28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29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30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31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33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본문해설>
오늘 말씀은, 다윗과 드고아 한 여인과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이 여인은 요압이 다윗에게 보낸 여인입니다.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챕니다(14:1). 그래서 꾀를 내어 지혜로운 여인을 불러서 다윗 왕의 마음을 떠봅니다. 다윗은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그 배후에 요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밧세바 사건 이후에 나단이 찾아왔던 것과는 다릅니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지만, 여인이 찾아온 것은 요압의 간계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요압은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 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결국 다윗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부릅니다. 도망간 아들을 부르는, 어떻게 보면 인자한 아버지 같은 모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앞으로 일어날 압살롬의 반역이라는 비극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술로 도망간지 3년 만에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을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누가복음에 15장에 나오는 탕자와 아버지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깊은 반성과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이 없고, 게다가 아버지도 완전한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다윗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서도 2년이라는 세월을 더 보낸 후에야 압살롬과 해우합니다(14:28). 다윗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불렀을 때, 그의 잘못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문제를 다룰 만한 용기와 힘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겨우 압살롬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으로 대신했던 것입니다.
압살롬은, 죄를 뉘우치고 있지 않았습니다. 3년여의 망명생활, 또 예루살렘에 돌아와서도 2년 동안 아버지 다윗의 얼굴을 보지 못하면서, 오히려 아버지 다윗의 처사가 불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잘못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반역을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요압의 중재로 5년 만에 얼굴을 맞대고 입맞춤을 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공의가 무너진 관계, 그저 겉으로만의 평안은, 더 심각한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완전한 용서와 회개가 없는 화해는, 실제적인 회복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진실된 교제의 관계, 사귐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 중에서 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본래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14:25). 외모가 대단히 수려하고 용맹하며 지혜롭기도 했다는 뜻입니다(14:26).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드고아의 여인의 말을 따라 압살롬을 부른 다윗의 집안에 어두움이 내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따라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냥 그렇게 덮어두는 것이 좋아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지 살펴야 합니다. 분명하게 정리하고 조치하지 않을 때, 더 큰 재앙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왕이기는 하지만, 그도 인간입니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인간인 그가 자신의 백성에게 또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실수와 잘못을 보면서, 실수하지 않으시는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다윗은 완전한 화평과 안식을 우리에게 주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말로 다윗의 잘못을 그냥 덮을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이후에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요압의 힘을 제어하지 못했고, 왕자들이 서로를 죽이고 급기야는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는 사건의 발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부족합니다. 실수합니다. 잘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말로 합리화해서는 안됩니다. 연약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변호해서도 안됩니다. 우리 삶 가운데서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기억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는 삶, 말씀에 분명하게 순종하고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우리는 때로 실수하고 잘못합니다.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변명 삼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오히려 우리 주님을 의지함으로 더 신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말씀을 따르는 우리가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2. 연약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은 늘 함께 하시고 지키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이끄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가 잘 드러나도록, 우리를 사용하시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3. 주보에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지도자들에게 지혜룰 주셔서 갈등과 분열 가운데서 바른 통치를 이루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