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3월 18일(토)
본문: 누가복음 19:1-10
<본문>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해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요단을 건너 여리고로 들어가십니다. 굳이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십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10절 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죽으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십니다. 그 와중에도 예수님은 사명을 잃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2절은 잃어버린 자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는 세리 중에서도 우두머리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죄인중의 죄인입니다. 매국노입니다. 로마에 붙어 같은 동족을 괴롭히는 자! 마치 친일파와 같습니다. 또한 삭개오는 부자입니다. 부자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24-25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처럼 삭개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기에도,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아도 구원과는 거리가 먼 세리장이요! 부자입니다!
구원과 매우 멀어 보이는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보고 싶었습니다. 키가 작아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이르러 서십니다. 삭개오를 쳐다보며 부르십니다.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십니다. 놀랍게도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오신 것만으로도 이미 회개합니다. 8절입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부자 관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 사람은 큰 부자여서 근심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낙타가 들어가는 바늘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달랐습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자신의 소유를 기꺼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자 합니다. 부자 관리는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 때문에 재물을 포기합니다. 삭개오는 기쁨으로 회개했습니다. 삶의 방향을 돌이켰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잃어버렸던 자를 찾았으니, 15장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돌아온 탕자의 말씀대로 기쁨이 가득합니다!
성도 여러분! 전혀 회개할 것 같지 않은 삭개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세리요, 부자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눈에도, 예수님의 말씀에도 전혀 구원 받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하셨습니다. 세리요, 부자인 사람도 구원 받았습니다!! 구원에 조건이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입니다. 주께서 먼저 잃어버린 자를 찾아와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부자 관리와 삭개오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재물은, 자신을 구원하는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자신에게는 구원을 얻을 만한 어떠한 공로도, 자격도 없음을 인정하는 것!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린아이처럼 화답하는 것! 이것이 회개요, 구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의 열매를 드러냅니다. 입술로만 회개했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기꺼이 버립니다. 기쁨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말씀과 성령으로 찾아오십니다. 잃어버린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사실 바리새인들과 부자 관리도 잃어버린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을 뿐입니다. 자신들은 잃어버린 자가 아니요,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했지만, 예수님을 거부함으로 오히려 하나님 백성이 아님을 드러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는 바리새인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부자 관리! 우리도 이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신앙생활의 경험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제쳐놓을 수 있습니다. 종교생활을 통해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말씀을 듣고 돌이키는 회개의 열매는 없습니다. 회개의 삶이 없으니 믿음이 자라거나 성숙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외형은, 모양은 있으니, 안하는 다른 사람보다 낫지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생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부자 관리처럼 자신 것 때문에 주의 말씀을 근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 앞에 어린 아이처럼 서야 합니다. 삭개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걸림이 되거나 거침이 되는 것들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과감히 그런 것들을 버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며,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이것은 손해 보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포기하고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하늘의 복과 즐거움을 누리는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늘의 복을 위해 이 땅의 것을 내어놓는 삶은 어떠하겠습니까? 영원한 것을 위해 이 땅의 것을 포기하는 삶! 그건 어리석인 삶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삶입니다!
말씀 앞에서 바래시인이나 부자 관리의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십시오. 오히려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삭개오처럼 믿음으로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의 열매를 맺으며 하늘의 복과 즐거움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제목>
1. 바리새인들과 부자 관리처럼 지금도 말씀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물리치지 않게 하소서. 어린아이처럼, 삭개오처럼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 고백하게 하소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하늘의 복과 즐거움에 참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2. <주보> 예배와 말씀 가운데 하늘의 복과 은혜를 누리는 주일을 사모하며 준비하여 나아오게 하소서.
3. 손송정 장로님께서 월요일부터 계속 입원 중에 계십니다. 쾌차하실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