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3월 20일(월)
본문: 누가복음 19:11-27
<본문>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해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나아가고 있으십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걸음걸음들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점점 다가오는 예루살렘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심장이 두근두근 거립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당장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이십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최종완성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그 나라는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그 곳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눅 18:33)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셨다가,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하늘과 땅이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완성의 날이 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일을 이 땅 교회에게 맡기시는 기간이 잠깐 있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이 땅의 교회에게 주시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간에 교회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비유로 가르쳐주십니다.
비유의 내용은 명확합니다.
어떤 한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출발합니다.
당시에 예를 든다면, 유대땅은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유대 땅의 총독이나 지방왕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로마 황제에게로 가서 인정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유력한 자들은 허락을 받기 위해 유대땅을 떠나 로마로 갑니다.
그렇다면, 유대땅은 잠시동안 왕이나 총독이 실제로는 없습니다.
허락을 받으러 간 사람의 신하들이 잠깐 다스립니다.
이 때는 정세가 아주 불안한 시기입니다.
로마로 간 유력한 사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서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비유에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간다는
상황도 비슷합니다.
귀인은 왕위를 받으러 떠납니다. 도시 안은 왕위를 받을 귀인이 부재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잠깐 동안 그의 영향력은 적어보입니다.
심지어 떠난 귀인은 왕위를 허락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귀인이 떠난 이 기간은 종들에게 위기와 긴장의 시간입니다.
비유에서, 귀인이 먼 나라로 떠나자마자, 불안한 정세가 드러납니다.
악한 자들은 곧바로 일어섭니다.
노골적으로 대적하고, 악한 계략으로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왕으로 인허되어 돌아오기를 실패하기를 바라며 반대하는 서신을 보냅니다.
누가복음 19:14입니다.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이러한 상황을 일어날 것을 알고서, 귀인은 도시를 떠나기 전에,
종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은화를 맡겼습니다.
은화를 가지고서, 장사하라 명령합니다.
13절입니다.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주인이 명한 장사는 단순히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이 부재한 것과 같은 상황 속에서,
적극적으로 왕이신 주인은 다시 온다는 것을 전하고,
주인의 영향력을 계속 나타내어라는 명령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주인의 이름으로 된 가게를 열어서 운영하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왕으로서 이곳으로 반드시 돌아오며,
왕으로서 통치는 계속될 것을 알리라는 말입니다.
비유 말씀을 보기에는
떠나는 주인이 나타나는 12-14절과 주인이 돌아오는 15절 사이가
짧아보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얼마나 걸렸을 지 모릅니다.
그리고 대적들이 일어나 혼란을 일으키는 긴장되고 불안한 기간입니다.
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적들은 목숨을 걸고 방해했습니다.
종들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기간동안, 고난의 기간동안
종들은 왕으로 돌아올 주인을 끝까지 신뢰하며,
충성스럽게 장사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불충한 종들은 자연스럽게 드러날 기간입니다.
약속대로 주인은 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은화를 맡기 종들을 불러 모읍니다.
결산의 시간입니다.
불안한 시기에 얼마나 충성을 다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왕은 은화를 남겨온 종들에게
‘많이 남겼구나. 수완이 좋구나. 지혜와 명철이 있구나’라고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네가 신실하다. 충성되다. 잘하였다. 착한 종들아’라고 칭찬했습니다.
결국 주인이 맡기신 은화에 대한 책임은,
왕에 대한 신실함, 충성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심판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왕에게 충성하지 않고, 왕이 맡기신 선물을 감춰둔 것입니다.
신실하지 않고 자기 살 길을 찾은 것과 같습니다.
악한 종은 교묘한 말로 왕을 칭찬하며, 넘어가려고 합니다.
“당신은 엄격한 사람입니다.”(21절)
'터프한 사람입니다.' 정도의 남성스러움을 칭송하려 합니다.
하지만 왕은 그 말에 속지 않습니다.
더하여 왕은 엄격하거나 잔인한 사람도 아닙니다.
종들의 신실함을 기뻐하는 긍휼이 풍성한 왕입니다.
그리고 왕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종들을 힘들게 했던 사악한 자들
반역자들에게도 심판을 내립니다(27절).
이 비유의 말씀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교훈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기대는 ‘지금’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당장에 완성되는 것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한을 사도와 교회에게 맡기시고,
잠시 이 땅을 떠나실 것입니다. 몸으로는 하늘에 계십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왕이신 예수님께서 부재한 것과 같은 시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입니다.
유대인들이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악한 생각으로 제자들과 교회를 핍박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이 만날 환란과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동안,
사도들은 ‘신실해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주께서 주신 복음과 은사들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는 것을 신실하게 전해야 합니다.
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오신다는 사실을
신실하게 알리며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삶은 왕위를 받으러 간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삶과 같습니다.
주께서 주신 복음을 가지고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붙드는 삶입니다.
이 땅은 불안하며, 왕이신 예수님과는 반대되는 ??향으로 갑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종들인 우리는 휩쓸려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들이 장사하며 주인을 신실하게 섬겼던 것처럼,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며 왕께 신실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충성입니다.
충성을 다하는 삶의 모양은 각 자가 당한 형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우리를 통해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사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 중심의 삶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이 땅에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인 교회를 세워가는 삶입니다.
종으로서 왕을 기다리며 충성입니다.
또한 어떤 형편이든지 계명을 좇아가는 삶입니다.
왕의 법과 명령을 따르는 삶입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결산하시며,
신실하며 충성된 자를 착하다 복되다 칭찬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 예수께 신실함과 충성으로 살아가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아멘.
<기도제목>
1. 왕이신 예수님을 섬기는 교회 중심적인 삶, 구체적인 삶에서 계명을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2. 하나님과 동행하고 말씀으로 마음을 채워, 아름답게 만드신 세상을 복되게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