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0월 2일(수) 새벽기도
본문: 고린도후서 11:16-33
<본문>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해설>
바울 선생은 사도로서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고린도에서 전했던 그의 설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선생의 설교와 복음 전파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도 열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르지 못한 말을 전하는 이들이 고린도 교회에 있었는데요, 그들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재능과 성공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은 특별한 권면을 합니다. 경고하는 것이지요. 육신을 따르고 세상의 성공만을 갈구하는 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이십니다. 10:4,5 봅시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하나님을 대항해 세워진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외모로 보고 평가하지 말고 그 내면을 보라고 합니다. 성도의 참된 가치는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적이고 영적인 신앙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10: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선생의 이런 권면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다 즐거이 감사하며 들었을까요? 아닙니다! 바울 선생은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유대 전통에 빠져있는 사람들, 재능과 성공에만 관심있는 사람들은 선생의 말씀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하였습니다. 11:1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선생은 마치 부모가 된듯이 부모의 마음으로 자녀와 같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합니다. 그래서 2절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뱀이 하와를 마혹하는 것 같은 이 세상에서, 하늘의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도록, 고린도 교회가 정결하고 신실하게 되도록 열심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간계로 그리스도를 바르게 섬기지 못하는 모습이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11:3).
하지만 다른 복음,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교회에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전하거나 다른 예수,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쉽게 인정하는 성도들을 지적하면서(11:4), 참된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역이 외면 당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선생은 오히려 그가 받은 사도의 직분과 말씀의 진실함을 항변합니다(11:5).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 그들은 거짓 사도이고 속이는 일꾼이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고 힐난합니다. 사탄도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지요(11:13,14). 그러니 그 언변과 외모로 복음을 판단하지 말고, 선생이 전했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오라고 항변합니다.
선생을 비난하는 자들이 했던 것 처럼, 선생도 자신이 자랑할만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자랑하려 한다면, 자신도 그런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이지요. 18절입니다.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그런 자랑에 빠져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런 자랑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고린도 교회를 허물고 있는데도, 바르게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19,20절 봅시다.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그런 것으로 보자면 자신도 외적인 면은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는 거지요. 유대인으로서의 출신(11:22) 즉 히브리인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복음으로 인해 많은 고난을 받았고, 심지어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11:23,24), 태장도 세 번 맞고 돌로도 맞고, 바다에서 죽을 위기도 여러 번 있었고, 그 외에도 강에서 산에서 광야에서 바다에서, 또 이방인들에게 심지어는 형제들에게까지 위험을 당하였다고 언급합니다(11:26). 육체의 질병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모든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11:30). 자랑으로 치자면 선생만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수고한 자가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랑이 그가 전하는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수고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믿음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선생은 자신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28절입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약점과 부족함이 많은 선생이지만 부모가 자녀를 살피듯이 여전히 교회를 돌보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은,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합니다. 인간적으로 보자면 두려움이고 부족함이고 수치일 수도 있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겨 내었고, 하나님이 주신 사역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30절 봅시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 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3절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말합니다. 다메섹 성을 광주리를 타고 창문으로 도망한 사실이지요. 작고 연약한 모습이지만, 이런 선생의 약함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어 가고 계시는 주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약함이 주님의 약함이 아니고, 우리의 강함이 주님의 강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종 우리는 착각합니다. 우리가 강해지고 성공하고 높아지면 주님도 강해지고 높아지고 영광을 얻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약한 것이 참으로 강함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강하고 복된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은 단지 자신의 사도 직분을 변호하기 위해서, 자존심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의 직분이 무시당하면, 그가 전하는 진리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가 외면 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그가 하였던 사역과 복음의 능력에 손해가 있을 것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난을 당하지만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의 이런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복음을 위한 그의 수고가 만들어낸 열매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바울의 수고와 같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습니까? 기쁨으로 그 수고를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기뻐함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고 있는지를 봅시다. 나의 성공, 경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자랑하는 우리가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또 겉으로 보이는 외모나 언변에 빠져서 복음을 판단하지 않도록 우리를 말씀 위에 굳게 세워주시기를 기도합시다.
2. 주보에 있는 기도제목입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교우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교우들이 말씀으로 위로를 얻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구하도록 하소서. 주님을 통해 참된 안식과 위로를 받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