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8(목)
느헤미야 5장 14-19절(구p.733)
염덕균 목사
<본문>
◎ 14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16 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17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백오십 명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18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해설>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과 이어지는 내용으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읍에 거주하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어떠한 모습으로 살폈는지를 보여줍니다. 어제 본문에서 우리는 유다 귀족들과 민장들이, 동족 유다 사람들의 어렵고 힘든 상황을 기회 삼아 그들을 착취하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들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의 회복을 의미하는 예루살렘 성벽과 성읍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정작 그 성벽 안에 거주하는 자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아니라, 세상 나라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는 형편에 있는 동족에게 높은 이자를 받아서 이윤을 챙기는가 하면, 그들의 가족과 자녀들을 이방 나라의 노예로 팔아 넘기고 거기서도 이윤을 취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 그들은 느헤미야와 더불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힘쓰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동족 유다 백성을 향한 약탈을 일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어떻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악행’을 행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살피고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총독 느헤미야를 통해 행해지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라고 하는 거룩한 명분과 사업에는 소위 헌신하고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들의 형제와 자매, 자기 민족의 고통에 대해서는 귀와 마음을 닫고,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며, 심지어는 그들의 어려운 형편과 상황을 이용햐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기회로 삼았던 겁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관례’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마땅한 ‘권한’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난 악행이라는 사실과 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느헤미야와 더불어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경건한 일에 동참하면서도 ‘동족 착취’라고 하는 끔찍한 악행을 동시에 저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유다 귀족들과 지도자들을 향해 느헤미야는 ‘분노’를 표출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 공작이 있었을 때, 느헤미야가 ‘노하였다’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고 있다는 소식에 산발랏과 도비야를 비롯한 대적들이 분노했지, 느헤미야가 그들을 향해 분노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다 귀족들과 민장들이 보이는 모습에 느헤미야는 분노합니다(느 5:6). 이것은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외부 세력에 의한 공격보다도, 유다 지도자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내부로부터의 변질과 위협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진정한 회복은 ‘성전과 성벽의 재건’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진정한 회복은 바로 그 ‘성전과 성벽’ 안을 출입하는 자들의 심령의 변화가 동반 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유다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성전과 성벽 재건에는 힘을 쓰지만, 그곳을 출입하는 자신들의 심령의 변화와 회복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유다 지도자들을 향해,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따라서, 유다 백성들을 돌볼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요구를 하는 과정에서, 느헤미야 자신 또한, 자신이 요구한 그 내용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에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느 5:14)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리고 이어지는 15절 말씀에서는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은을 빼앗았다”(느 5:1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두 구절을 연결해서 읽으면 ‘내 앞에 있던 총독들은 백성들로부터 양식과 포도주와 은을 부당하게 빼앗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는 의미로 이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빼앗다”라고 번역 된 단어는 ‘세금을 부과하다’라는 의미의 중립적인 표현입니다. 즉, 백성들로부터 양식과 포도주, 그리고 은을 거두는 것은 총독에게 부여되어 있는 ‘합법적인 권한’이었습니다. 물론, 느헤미야 앞서 지내던 총독들이 유다 백성들로부터 거둔 그 세금의 양은 매우 과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백성들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녹봉을 충당하는 것은 총독으로서 마땅한 권한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바로 그 당연하고도 마땅한 권한을 유다 백성들을 위하여 기꺼이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무려 12년 동안이나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12년은 어제 살펴본 사건이 일어나던 그때 당시까지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12년은 느헤미야가 유다 땅의 총독으로 재임하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이처럼 느헤미야가 보여준 헌신은 단순히 유다 지도자들에게 잠시 동안 보여줄 ‘본’을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유다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는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을 향해, 느헤미야는 유다 동족들에 대한, 그들의 악행을 그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보여주는 모습은, 단순히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한을 기꺼이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도 잠시 잠깐 본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간 행한 것이 아니라, 12년 동안이나 그렇게 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느헤미야는 이러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일까요? 어떻게 그는 자신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한을 기꺼이 동족 유다 백성들을 위해서 포기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느 5:15)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두려움. 하나님을 향한 존경심을 품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두려움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은, 하나님 백성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으로 가득 차있던 느헤미야의 마음이 느헤미야로 하여금 자신의 안위와 권한을 추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나아가도록 이끌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또한 자기를 낮추사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빌 2:6-8). 바로 그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느헤미야가 총독으로서의 자기 권한을 포기하고 동족 유다 백성들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백성의 회복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이 되신 것은, 죄인을 사랑하사 구원하기 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존중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는 것, 성부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과 헌신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사랑과 헌신의 터 위에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를 그러한 헌신과 희생, 수고와 섬김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그 섬김과 희생과 헌신적 사랑을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형제와 자매와 이웃들을 위하여, 기꺼이 나누고 베풀며 헌신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채움 받은 그 사랑과 은혜를 기꺼이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수고와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사랑과 두려움이, 우리 자신을 기쁘게 내어주는 모습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피값주고 사신 이 교회를 온전하고 바르게 세워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제목]
1.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도록.
2. 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을 기꺼이 형제와 자매, 지체들을 위해 내어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3. [주보] 위정자들이 국민을 위한 정책을 계획하게 하시고, 나라의 안보와 경제의 위기들이 원만하게 잘 해결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