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9(금)
느헤미야 6장 1-14절(구p.734)
염덕균 목사
<본문>
◎ 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3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4 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8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9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 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12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13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해설>
오늘 본문은 성벽 재건이 마무리 되어 갈 시점에 느헤미야를 향한 암살 시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갈등 중에도 느헤미야는 신실하게 성벽 재건 공사를 진행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모든 성벽의 허물어진 틈들을 메워나갔고, 이제 성벽 문을 다는 일만 남겨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은 산발랏과 도비야를 비롯한 느헤미야의 대적들을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위협과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성벽 재건 공사가 꾸준히 지속되어 이제 마지막 마무리만 남겨둔 상황이 그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느헤미야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는데요. 이때 대적들이 느헤미야를 해하기 위해 세운 첫 번째 계획은,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오노 평지’에서 만날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정상 회담’을 요청한 것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이것이 자신을 해하려는 음모라는 것을 단번에 파악했습니다. 당시 오노 평지는 예루살렘으로부터 32km 떨어진 지역으로, 당시 교통 수단으로는 하룻 길을 가야 도달할 수 있는 땅으로, 당시 산발랏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성정 공사가 마무리 되려는 시점에 자신을 오노 평지로 부른다는 것은, 자신을 제거하는 것을 통해 성벽 재건에 훼방을 놓고자 하는 그들의 노골적인 노림수가 보이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이때 느헤미야가 산발랏의 제안을 거절하는 태도는 매우 정중합니다. 누가 봐도 자신을 해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제안이었지만,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노골적인 의도를 표면에 드러내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내가 이제 큰 역사(공사)를 하고 있으니, 그것을 중지하고 내려가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라는 말로 산발랏의 제안을 정중히 거부합니다.
느헤미야의 이러한 태도는, 산발랏의 악한 의도를 있는 그대로 지적하고 들추어 내는 것으로 괜한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악랄하고 노골적인 제안에 똑같이 노골적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산발랏의 악랄하고 노골적인 태도에도 느헤미야는 온유함과 정중함으로 그를 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느헤미야가 자신이 요청한 ‘정상 회담’을 거부하자, 산발랏은 두 번째 계획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은 ‘정상 회담’을 ‘여러 번’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산발랏은 무려 네 번씩이나 만남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때, 이 ‘여러 번’의 만남 요청은 단순히 산발랏이 얼마나 끈질긴 사람이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사전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의 내용이 ‘다섯 번째’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쌓고, 그 땅의 왕이 되려고 한다”라는 모함이었습니다. 즉, 산발랏이 여러 번의 만남을 요구한 것은, 느헤미야가, 자신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만남을 거부하고, 성벽 재건에 열의를 보이는 데에 꿍꿍이가 있다라고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꿍꿍이가 바로,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반역하고, 유다의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산발랏은, 느헤미야에게 보내는 편지를 일부러 ‘봉인’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요한 편지를 보낼 때는, 두루마리를 묶은 다음에, 그 주변에 진흙을 발라서, 편지의 수신자가 확인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은 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산발랏은 일부러 ‘봉인하지 않은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마치 이 편지가 느헤미야에게 전달되기 전에,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읽혀진 것처럼 상황을 꾸미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반역을 꾀하고, 유다의 왕이 되려고 하는 시도가, 단순히 산발랏 자신 뿐만 아니라, 마치 주변의 다른 족속들 역시도 알고 있는 사실인 것처럼 꾸미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산발랏은 느헤미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혹여라도 ‘반역자로 몰리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성벽 재건 마무리 공사가 중단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렇게 느헤미야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준 다음, 또 한 가지 함정을 파두었는데요. 10절 말씀을 보면 산발랏의 위협이 계속 되자 ‘스마야’라는 사람이 느헤미야에게 한 가지 예언과 제안을 합니다. 그 예언과 제안은 바로 산발랏과 대적들이 침략해 올 것인데, 잠시 동안이라도 ‘외소’, 곧 ‘성전’ 안으로 숨어들어가 위협을 피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말에는 ‘외소’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은 ‘성전 안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대적의 위협을 피하기 위함이니, 잠시 동안 성전에 몸을 숨기는 것으로 위기를 피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마야의 이 제안은, ‘성전’과 관련 된 율법의 규례를 어겨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성전은 ‘제사장’만이 출입할 수 있는 장소로, 거룩하게 구별 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민 18:6-7). 그런데 지금 스마야는, 산발랏과 대적들이 침략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전하며, 그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잠시만 성전의 규례를 어기자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스마야가 느헤미야에게 한 예언과 제안은, 산발랏이 뇌물을 주고 스마야에게 시킨 것이었습니다(느 6:12). 산발랏이 이러한 일을 꾸민 것은, 자신의 암살 시도가 실패할 경우, 느헤미야가 그들의 율법의 규례를 어겨, 유다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느헤미야의 지도력과 리더쉽이 느헤미야의 과오로 인해서 무너지도록 만들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를 무너뜨리기 위한 산발랏과 그 대적들의 시도는 정말로 교묘하고, 치밀하며, 집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 백성을 대적하고 방해하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결코 중립적인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넘어뜨리고 무너뜨리기 위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교묘하고 집요하게 달려듭니다. 그리고 그 세상의 정신 뒤에는 ‘마귀의 간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느헤미야는 크게 두 가지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는데요. 느헤미야가 보여주는 첫 번째 모습, 그것은 대적의 다양한 위협과 공격에 흔들리거나 좌지우지 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사명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오노 평지에서 만남을 가지자는 산발랏의 요구는, 매우 노골적이고 집요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를 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슨 ‘큰 역사’, 곧 성벽 재건 공사의 마무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어서 느헤미야가 보여주는 두 번쨰 모습은, 그 어떠한 경우라 하더라도 말씀이 말한 기준을 넘어서진 않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를 향해 산발랏과 대적들의 위협에 대해 예언하며, 잠시만 성전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라는 스마야 선지자의 제안은 분명 솔깃한 이야기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지자가 전해주는 예언과 제안의 말씀이고, 잠시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성전에 숨는 것인데, 이정도 상황과 환경이 갖추어져 있으면, 충분히 성전을 활용해도 괜찮지 않았겠습니까? 더군다나 느헤미야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숨기는 것 쯤은, 하나님께서도 충분히 용납해 주실 만한 일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전 출입’에 대한 하나님의 규례를 거스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안위를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말씀의 규례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한다면, 결코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느헤미야는 산발랏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거짓 예언과 잘못 된 제안을 했던 스마야의 술수와 계략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이러한 모습은,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당하시던 때에 그리스도께서 시험을 물리치시는 모습을 떠올리도록 만듭니다. 마귀의 세 가지 시험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시험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단호하고 분명하게 물리치셨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빠지는 착각 중 하나는 시험과 미혹의 순간을 마주할 때, 하나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일이 너무나도 어렵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한편으로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시험과 미혹의 순간 앞에 서게 되면 말씀을 따를 때 주어지는 고난과 희생, 손해와 고초 등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시험과 미혹의 순간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기에,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이게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세우신 소명과 사명의 자리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기에,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는 그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걸어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느헤미야는, 분명 하나님께 부여하신 사명에 매우 헌신되어 있는 ‘훌륭한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가 산발랏을 비롯한 대적들의 교묘하고 집요한 공격 앞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 개인의 탁월함과 위대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느헤미야는 스스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스마야 선지자의 거짓된 제안 앞에서도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에게 주어져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과 그 규례에 순종하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바로 이 느헤미야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기 바랍니다.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그 길을, 우리에게 부과된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부르심의 그 길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주어진 하나님의 지팡이와 울타리로 여길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시험과 미혹의 순간을 마주할 때, 붙들고 의지할 말씀을 떠올리게 하시고, 그 말씀을 붙들며 의지하는 은혜가 주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제목]
1.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상황에 흔들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사명에 집중하는 우리가 되도록.
2.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거충장스럽고 부담스러운 짐과 의무가 아니라, 우리을 생명과 진리 안에 머무르도록 하는 은혜의 선물임을 기억하도록.
3. [주보] 교회가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새로운 한 해를 잘 계획하게 하시고, 내년 한 해를 섬기는 여러 봉사자들이 잘 세워지도록.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