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2월 3일(수) 새벽기도
본문: 요한복음 6:1-15
설교자: 권준 목사
[본문]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해설]
예수님은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큰 무리가 주님을 따르는데요, 2절을 보시면,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앞서 베데스다라는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표적을 보고 열광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소위 육적인 관심이지요. 그런데 주님은 표적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영적 문제를 가르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에 오르시고 제자들과 함께 앉으십니다. 그곳에서 제자들과 큰 무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면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깝다’고 언급합니다. 유월절은 애굽에 있었던 이스라엘이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은 절기입니다. 바로 그 절기가 우리 주님을 통해 완전하게 성취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그래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는 빌립에게 묻습니다. 5절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주님께서 빌립을 시험하십니다. 6절은 분명하게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빌립이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보고 믿음을 확인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교육적인 의도이지요.
빌립의 대답을 봅시다. 7절입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200데나리온은 노동자의 200일 치 급료입니다. 지금으로 보면, 1년 치 연봉 정도 됩니다. 빌립은 정확한 경비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매우 현실적인 대답입니다. 소위 합리적인 방식이지요.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일반적인 대답입니다. 주님이 물으신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안드레의 대답도 비슷합니다. 어떤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무리들 중에는 이렇게 도시락을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으니, 200데나리온 보다는 적은 돈이 필요하리라는 말입니다. 결국 빌립과 안드레의 말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떻게 하시지요? 사람들을 앉게 하십니다. 사람들의 수가 5천 명 정도 되었다고 말씀하는데요, 그리고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물고기도 원하는대로 나누어 주십니다(6:11). 사람들은 풍족하게 먹었습니다. 음식이 많아서 먹고 난 후에 남은 조각을 제자들이 거두자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6:13). ‘열둘’이라는 말은 풍성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열두 제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새 언약 공동체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제자들, 사도들이 먹이는 영적 양식과 그 양식으로 세워지는 교회입니다. 주님은 이 이적을 통해 당신께서 자기 백성들을 먹이시는 생명의 떡, 참된 메시야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앞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도 주님은 포도주를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것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14절을 보시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광야에서 만나로 먹였던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지요? 15절 봅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인지가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지금 이들의 관심은, ‘선지자’, ‘임금’입니다. 소위 강력한 힘을 가진 정치 지도자입니다. 모세와 같은 강력한 영도력을 가진 지도자, 다윗과 같은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부강하게 했던 왕! 이런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여 이 땅에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고, 우리를 윤택하고 즐겁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일을 예수님이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세상 나라를 위해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소위 정치적인, 민족적인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떻게 하시지요? 15절 다시 한번 봅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주님은 그들을 피해서 떠나십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에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배불리 먹은 사람들, 이적을 보았던 사람들은, 정치적인 욕망을 가지고 우리 주님을 붙들려고 했습니다. 자기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왕이 되기를 요구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우리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욕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내 요구, 우리의 바램을 아뢰기에 바쁘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 보다는 이 땅의 나라, 세상의 정치와 번영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길은, 그분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 구주이시고, 온 세상의 구주, 영원한 나라를 가르치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이적 이후에 사람들의 요구를 물리치시고 떠나가셨던 우리 주님의 마음을 살피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생명의 떡으로, 영생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만나고, 우리 주님이 부르시는 영원의 삶으로 나아가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표적에만 관심이 있고 매달리지 않게 하소서! 참된 양식, 온 세상의 구주로 오신 우리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소서.
2. 주보에 있는 기도제목입니다. 더욱 열심을 내어 섬기게 하시고 기관, 구역 가운데 서로를 돌아보고 힘써 기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