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2월 27일(금) 새벽기도
본문: 요한복음 10:7-21
찬양: 570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본문]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9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해설]
예수님은 스스로를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7). ‘양의 문’은 무엇입니까? 양들이 양 우리로 들어가는 안전한 통로를 말합니다. 양들이 이 문을 통해 들어가고, 나갑니다. 즉 예수님만이 구원으로 가는 유일한 문이자, 그분을 통해 참된 꼴 곧 생명을 얻습니다. 예루살렘 성문이 거룩한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듯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 되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도둑인 거짓 선지자와 지도자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만, 예수님은 양의 문으로 양들이 구원의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거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로 소개하십니다. 그분은 삯꾼이 아니라 진정한 목자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일용직 노동자는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만, 목자는 자신의 일에 마음을 쏟습니다. 목자는 위험이 와도 도망치지 않고, 양들을 버리지 않으며, 목숨을 걸고 양들을 지키려 합니다. 자신의 양들을 잘 알고,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분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셨습니다.
14절은 목자 역할의 더욱 뚜렷한 특징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그분의 양들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선한 목자와 양들은 서로를 완전히 알고 신뢰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직접 “적은 무리”(눅 12:32)를 돌보시고, 그들과 교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목자의 선함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누리던 관계를 반영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완전히 알고 신뢰하는 관계입니다. 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에서 예수님은 양들과의 교제와 관계를 이어가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모든 양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다른 양들이 내게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양들은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 온 세상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양들을 돌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더 이상 방황하는 양들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께서 양 떼를 모으실 때 한 분이신 목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일치가 일어납니다. 한 무리가 되는 것이죠. 한 목자의 보호 속에서 모든 양들은 함께 걸어가게 됩니다. 특별히 16절에서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된다고 말씀하는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은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온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양 떼 모두에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처럼 생명을 내어주신다고 해서, 예수님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18절은 “내게서 빼앗는 자”라고 말하는데, 예수님은 생명을 빼앗기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시고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사명을 완수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분열이 일어납니다. 선한 목자 비유가 유대교 내에서 새로운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에 들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 사역에 매우 주의를 기울였음을 보여줍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을 고치신 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자각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자신들이 맹인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양의 문이자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분은 양 무리를 위하여 자기 생명도 내어주신 분으로, 아버지와 누리는 사랑의 관계를 우리와도 누리길 원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바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생명까지도 내어주신, 생명의 권세를 가지신 그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를 주님의 다스림 안에 머물도록 하기 위하여,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부르심 앞에 신실하게 살아갑시다.
[기도제목]
1. <말씀을 기억하며> 양의 문이자,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시는 예수님과 친밀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주보 기도제목> 2청년부 말씀사경회를 통해 청년들이 말씀을 기초로 판단하고, 주님의 뜻을 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