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2(월)
요한복음 11장 1-16절(신약p.162)
염덕균 목사
<본문>
◎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해설>
오늘 본문은
한 병에 걸려 있는 사람에 관한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병에 걸린 사람은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오빠인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는 사람입니다.
당시 나사로는
상당히 심각한 병에 걸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의 두 동생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자기 오빠가 병든 소식을 전달합니다.
예수님께 이 소식을 전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기 오빠 나사로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전달 받은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예수님의 이 대답은,
나사로가 병든 상황을 두고서
근심과 염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심 시켜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죽을 병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대답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충분히 크게 안심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당시는 누군가 병에 걸리는 것이
그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앞에서
날때부터 맹인인 자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보인 반응에서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에 걸려 있는 상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특히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굳이 나사로를 고치기 위해서
다시 유대 땅으로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에
안심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당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일과 발언들로 인해
예수님을 향한 유대인들의 반감,
특히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의 반감이
극도로 높아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 입장에서는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면,
굳이 유대로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더불어서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틀이 지난 이후에
갑자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유대로 다시 가자”(7절)
지금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이 발언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왜 이 시점에서 유대로 가려고 하신단 말인가?’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요 11:8)
지금 제자들의 머리 속에는
‘나사로’에 관한 생각이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틀 전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서
유대로 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굳이 아무런 목적이나 계획 없이
유대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동문 서답 같은 발언을 하십니다.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요 11:9-10)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말씀입니다.
유대 땅에 왜 가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아마 제자들도 그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11절을 보시면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라고 되어있는데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도
제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별다른 반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서야
제자들은 병에 든 나사로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께서
병에 걸려 잠들어 있는 나사로를
깨우기 위해서 가신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말합니다.
“주여 잠들었으면 났겠나이다”(요 11:12)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요 11:14)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틀 전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걸린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지금 나사로가 죽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알고 계신단 말인가?
그리고 만약 나사로가 진짜 죽은 것이라면,
이틀 전에 ‘죽을 병이 아니라’ 말씀하신 것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인해서
많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당황스러워 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요 11:15)
그렇게 당황스러워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면에서는
더욱 당황스러워질 법한 발언을 하십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라”
지금 그들의 동료이자 친구인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렸던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셨으면서
그를 치료해 주셨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나사로가 죽을 병이 아니었음에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곳에 있지 않았던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역시나 제자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나사로에로 가자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말들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든 예수님께서 지금
나사로에게로 가자고 말씀하시니,
조문이라도 가시려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이에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앞장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 11:16)
지금 도마의 이 발언은
예수님을 향한 유대인들의 반감으로 인해
유대 땅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일종의 반성이었습니다.
분명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그 따르는 자들을 향해
강한 적대감과 반감을 가지고 있고,
어쩌면 위험해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기에 굳이 불필요하게
유대 땅에 들어갈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지금 자신의 스승은
그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동료이자 친구 나사로를 보러 가자고 말씀하시니,
유대 땅에 가지 않으려 했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그래서 동료 제자들을 향해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보면, 도마의 이 발언은
상당히 의리가 있고, 충성스럽게 보입니다.
유대인들의 반감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죽은 동료 나사로를 만나시고,
그의 가족들을 위로하러 가시려는 모습에,
그들 또한 용기를 내어서
함께 참여하려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도마를 위시한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의 의미를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와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도
태생적으로 ‘어둠’에 놓여 있는 자들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제자들의 무지와 어리석음,
어둠의 상태에 놓여 있는 자들에게
빛으로서 함께 계시며,
그들이 어그러진 길로 나아가지 않고,
실족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무지와 어둠을 밝히시는
빛으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 예수님을 붙드는 자들 만이,
빛 가운데 거하며, 실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며,
진리와 생명 속에 걸어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1. 우리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우치시는 예수님을 붙잡는 가운데, 진리 안에 걸어가는 우리가 되도록.
2. [주보] 성찬을 통해 주님의 거룩하신 몸에 참여하며,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잘 자라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