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2월 15일(목) 새벽기도
본문: 마가복음 5:35-43
설교: 권준 목사
<본문>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해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따라서, 삼위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말씀도 믿음에 대해서 교훈을 하는데요, 사실 오늘 말씀은, 5:21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시는 사건을 기록하면서, 그 중간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끼워 놓았습니다. 그래서 두 이야기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24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야이로의 요청을 듣고, 그의 집으로 가십니다. 상당히 위급한 순간이지요.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25절을 보시면,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를 만나시고, 그 여인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태도를 한번 보세요.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을 향해서 가고 계시긴 하지만, 야이로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 야이로의 딸이 죽게 될지도 모르는 긴박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급하게 가지 않습니다. 그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서 혈루증을 앓고 있는, 한 이름 없는 한 여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계십니다.
회당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여인과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이름 없는 한 초라한 여인이 회당장인 야이로 보다 먼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여인이 예수님 앞을 가로막고 선 것도 아닙니다. 웃자락을 붙잡고 간청한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이 먼저 자신의 옷에 손 댄자가 누구인지를 물었습니다. 이 바쁜 시간에 일부러 시간을 지체하고 있습니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야이로의 딸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좋은 일이긴 합니다만, 지금 야이로에게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언제 아이가 죽을지 모르니까요!
사실 혈루증을 앓는 여자를 고치시는 것은, 그렇게 시급을 다투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먼저 야이로의 딸을 보고 난 뒤에, 돌아와서 천천히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은 분명히 야이로에게는 ‘큰 시험’이었습니다. 야이로는 이름없는 여인 때문에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 기다리는 시간이 야이로에게는 1분 1초가 고통과 불안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걱정과 불안한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이로의 태도를 보세요. 그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본래 선한 사람이고, 마음이 좋은 사람이어서 기다릴 수 있었습니까? 회당장이라는 체면 때문에 점잖게 기다릴 수 있었던 걸까요? 지금 성경이 말할려고 하는 것은 ‘그가 성격이 좋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강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이로는 ‘이름없는 한 여인’이 회당장인 자신 보다도 먼저 도움받고, 대접받고 있는 것을 묵묵히 인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시험을 야이로는 ‘믿음’으로 인내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만이 자신의 병든 딸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내하고 있습니다. 야이로는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혈루병에 걸린 여인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자신의 딸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능력이 있는 분이시구나!!!
그런데 야이로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34, 35절을 봅시다. 여인의 병이 고쳐지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이라면 우리 딸의 병도 고치겠구나!’라고 확신을 얻고 있는 그 순간에, 거의 똑같은 시간에 집에서 연락이 옵니다. 딸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너무나 기뻐하는 그 순간에, 참으로 기막힌 소식을 듣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너무나 야속합니다. 예수님이 너무 여유롭게 행동하셔서 이제는 예수님이 가셔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래서 35절에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이제 그냥 예수님을 보내 드리시지요.” 이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절망적인 순간에 주님은, 야이로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36절,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지금 주님은 다시 한번 야이로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앞서 야이로는, 여인의 병이 고쳐지는 것을 보고서, 자기의 딸도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위대한 선지자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큰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도 의사들이 병든 자를 고칠 수 있다고는 다들 생각하지만, 죽은 자를 살릴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야이로는 결단의 순간에 와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다른 어떤 선지자들 보다도 위대할뿐 아니라, 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했던 메시야이심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입니다(사29:18; 35:5,6; 42:7). 우리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는 분,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지금 야이로는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40절 보세요,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가서, 아이가 잔다고 말씀하시고, 부모와 함께 들어갈 때, 사람들의 태도가 어떠했습니까? “비웃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를 야이로는 이겨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비웃지만, 야이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앞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해라!” “너가 믿고 있는 너의 신앙을 굳게 지켜라!”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야이로의 태도를 보십시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 순간에도, 절망의 순간에도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야이로는 오늘 우리에게 살아있는 믿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이 그의 행위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너무나 단순하고 무책임한 말씀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강력하게 몰아치는 세상의 물결과 세력, 유행을 이길 수 있은 힘, 오직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큰 광풍이 이는 중에도 붙잡아야 할 것, 예수 그리스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 많다는 것으로 압박하고, 힘과 세력으로 달려드는 세상의 유행과 힘을 이길 수 있는 힘,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뿐이고, 이를 믿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오직 믿기만 하라!”는 우리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과 고통 가운에 있는 자녀들을 살피고 붙드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 믿음으로 그 은혜와 복을 받고 누리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 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두려워 말고 오직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는 우리가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강하게 몰아치는 세상의 유행과 세력에 오직 말씀으로 반응하고 붙잡는 우리가 되게 해주소서! 오늘 하루도 말씀으로 시작하게 하시고, 이런 우리의 삶을 붙잡아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2. 주보에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치료의 과정과 회복 중에 있는교우들과 가족들을 위로하시고, 주의 사랑으로 채워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