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5(수) 새벽기도회
본문 - 사무엘상 14:16-23
설교자 - 권준 담임목사
<본문> 사무엘상 14:16-23
14: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14:17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14: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
14: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14:20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14:21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14:22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14: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본문해설>
이스라엘 역사상 이스라엘을 가장 힘들게 하고 괴롭혔던 민족들 중 하나가 블레셋입니다. 감히 전투에 임하지 못했던 사울과 달리 요나단은 이 전쟁의 결과가 ‘사람의 수가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14:6)고 앞선 본문에서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백성을 압박하는 이 악한 세력에 대항하여 나아가는, 언약에 충실한 모습이 요나단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고 힘이 있으니, 우리가 충분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다. 전쟁이 여호와께 속하였다는 것, 요나단은 이것을 정확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사울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요나단의 공격으로 블레셋 진영 안에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사울은 제사장 아히야를 불러 여호와의 언약궤를 서둘러 가져오게 합니다. 그러고는 전쟁의 승패가 어디에 누구에게 지금 달려 있는지를 보게 합니다. 그러다가 블레셋 진영이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보고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거두어 버립니다.
이런 사울의 태도는 자만입니다. 교만입니다.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략과 현재 이 전쟁의 판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것을 보고서 이 전쟁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으로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의 모습은 이러한데 백성의 모습은 또 어떠합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자 그동안 이스라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적국의 군대에 용병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과 형제들을 공격하러 왔다가 이제는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길 것 같으니, 돌이켜 다시 이스라엘 군대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적국의 군대가 되어 자기의 동족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22절을 보시면,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싸우러 나옵니다. 형제와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그들은 숨어버렸습니다. 적군이 코앞에 와있어도 그들은 자신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 전쟁에 나아가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당대의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지 않고, 백성들은 동족이 당하는 고통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된다’는 것, 바로 그것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말그대로 은혜입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고, 백성들은 신실하지 않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 백성들에게 신실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신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가고 있습니까? 온전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따르며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당대 모습처럼 우리도 눈에 보이는 것, 혹은 우리가 가진 것, 혹은 나의 힘과 나의 능력을 더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바울 선생은, <디모데후서 3:5>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기도하기>
1.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2. 경건의 모양뿐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가진 우리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