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4(금) 새벽기도회
본문: 사무엘상 17장 1-11절
설교자: 염덕균 목사
<본문>
1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2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3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본문 해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과 엘라 골짜기에서 대치 중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때 블레셋의 한 장수가 등장하는데, 그는 가드 사람 골리앗입니다.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뼘(약 270cm 이상)이었고, 그가 차고 있는 갑옷의 무게도 무려 5천 세겔(약 60kg이상)이었습니다.
골리앗이 속한 ‘가드’ 족속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에 해당합니다(민 13:33). 크고 강한 사람들을 많이 낳는 혈통으로, 대대로 ‘용사’가 많이 배출 되는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용사’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이 단어가 ‘언약 밖의 사람들’을 향하여 사용되는 경우,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들을 가리켜 ‘용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예: 창 6:4; 10:4)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골리앗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덩치와 힘을 과시하고 뽐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과 그 언약 백성들을 모욕하고 조롱합니다. ‘뱀의 후손’(불경건한 백성)이 ‘여자의 후손’(경건한 백성)을 공격하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창 3:15).
‘뱀의 후손’으로 상징 되는 세상 나라는 자신들이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발전시킨 것들을 의지합니다. 본문에서 골리앗이 자신의 신장과 완력, 입고 있던 갑옷과 무기를 앞세웠던 것처럼, 세상 나라는 이 세상의 기술, 문명, 힘, 권력, 재물, 유행 등과 같은 것들을 앞세우며,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뱀의 후손’, ‘세상 나라’의 도전 앞에서, ‘여자의 후손’,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보여주어야 할 모습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붙드는 가운데, 세상의 도전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의 도전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도전과 모욕에 대해,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사무엘상 11장 6절에서, 하나님의 영에 감동 되었던 사울은, 암몬 사람 나하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에, 크게 노를 발하며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난 사울의 모습은, 뱀의 후손 골리앗의 모욕과 조롱에도, 아무런 반응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혹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요? 세상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와 원리와 방법을 따르라고, 우리 신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생존 경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지금 당장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자기 몫을 챙겨놓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자기만의 시간과 여가를 즐기지 못하면 아까운 인생을 보내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무지하고 어리석으며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여기게 만들며, 그렇게 점점 교회 중심의 생활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제목>
1. 세상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2. 세상의 도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붙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