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1(토) 새벽기도회
사도행전 13장 16-41절(신p.210)
<본문>
◎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해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어제 새벽에 살펴본 말씀으로부터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가 구약 성경을 기초로 하여 복음의 말씀을 설명하는 내용인데요. 이때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실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벗어난 지역, 즉 ‘이방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는 거의 대부분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13장 5절 말씀에서도 바울과 그 일행들은 유대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말씀을 전했고, 어제 본문 15절 말씀에서도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회당에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 곧 ‘구약 성경’을 읽은 다음에 말씀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로 주목할 내용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대상들인데요. 어제 본문 사도행전 16절과 26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과 ‘아브라함의 후손’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 표현입니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전에도 한번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수식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때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당시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나타내는 일종의 ‘전문 용어’인데요.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비록 그 혈통과 신분은 ‘이방인’, ‘헬라인’이지만 구약 성경의 가르침과 그 구약 성경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비록 유대인의 표라 할 수 있는 ‘할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구약 성경이 알려주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고백을 지닌 자들입니다.
회당, 이스라엘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자들’이러한 사실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설명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의 사람들에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의 회당은, 비록 그들이 살아가는 땅은 이방 지역이지만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 곧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고자 했었던 유대인들이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 구약 성경의 가르침에 익숙한 이스라엘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 곧 유대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또한 이 회당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곧 ‘이방인 출신으로서 유대교 신앙을 지닌 자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혈통적으로는 유대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 없는 자들로 여겨졌지만 그들 역시도 회당에서 가르쳐지는 구약 성경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던 자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바울과 그 일행들이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은 전한 것은 결국 그가 ‘구약에 익숙한 자들’, ‘성경에 익숙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그의 선교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기에 바울은 성경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그야말로 생짜배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감당했던 복음 사역에 종종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일도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테네’라고 불리는 ‘아덴’에서의 복음 선포이지요.
하지만 앞으로 사도행전을 읽어 나가시다보면 바울은 자신이 다니는 지역마다 거의 대부분 ‘유대인들의 회당’을 찾았고, 거기서 ‘유대인’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곧 이방인 출신으로 구약에 익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요? 흔히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그 복음을 전달 받은 사람들이 잘 이해도 못하고, 설득 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강력하고 신비로운 힘과 능력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에게 되고,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렇게 외치고 다니다 보면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신비로운 능력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예수를 믿고,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들의 전도와 선교가 합리성과 설득력은 잃어버린 채, 아무렇게나 외쳐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사람들이 이해하든지, 하지 않든지 그저 우리는 예수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의 전도와 선교가 무례하게 나타날 수도 있고,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바울이 보여주는 복음 전파는 결코 ‘외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무논리, 무대포식 선교와 전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에 익숙한 자들에게 구약 성경의 내용을 잘 정리하여 그 구약 성경이 약속한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15~41절에 기록된 이 긴 내용이 바로 구약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바울 사도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는 무턱대고 ‘예수를 믿으십시요!’‘예수 믿어야 천국 갑니다!’‘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라는 식으로 전도하고 선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이 아는 구약 성경을 가지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이러한 선교 방법은 우리도 동일하게 따르고 적용해야 할 전도와 선교의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듣든지 말든지, 너희가 알아 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나는 오직 예수 믿으라고 전할 뿐이야!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합당한 태도와 자세라 할 수 없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를 거쳐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지속적인 ‘설명과 설득’, ‘이해를 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을 통해사도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우리의 복음 전파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먼저 이 복음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습니까? 또 이 복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복음을 잘 알아 가고자 하는 노력과 열심을 얼마나 들이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1. 우리의 복음 전파가 무례하고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담대함과 설득력을 함께 발휘하게 될 수 있도록.
2. 복음을 전파하기에 앞서, 복음이 가르치는 내용을 충분하게 배우고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교우들. (특별히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배움의 노력을 성실하게 기울이도록.)
3. [주보 기도제목]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 주일 공예배를 준비하고 참여하게 하시고, 예배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잘 자라 나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