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2(금) 새벽기도회
에스라 7장 11~26절(구p.719)
<본문>
◎ 11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13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14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15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16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17 그들의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고
18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쓸지며
19 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그릇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20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21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22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2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26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해설>
오늘 본문은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에 당시 바사 제국의 왕 아닥사스다가 에스라를 위하여 내린 ‘조서’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조서의 내용은 크게 4가지 인데요. 첫째, 13절 말씀에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에스라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함께 돌아가라는 내용입니다. 둘째,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와 더불어서 그의 최측근인 ‘일곱 자문관들’에 의해서 공적인 파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예루살렘으로 귀환화며 성전을 건축하고 섬기는데 드는 비용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는 비용을 바사 제국 세금으로 충당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성전과 관련 된 일을 하는 자들, 성전 봉사자들에게는조공, 관세, 통행세를 면제해 주라는 내용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마지막 넷째, 이렇게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율법과 에스라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에게는 엄히 재판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아닥사스사다 왕이 내린 조서’가 에스라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왜 성경은 아닥사스다가 조서를 내렸다는 사실과 그 조서의 내용까지 말하고 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고 이끄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아닥사스다에 대하여서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그만큼 당시 바사 제국 왕, 아닥사스다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주관하셔서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을 돕고 지지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아닥사스다가 이와 같은 조서를 내려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을 돕는 이유를 말하는데요.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라 7:23) 이 말을 풀어서 말해보자면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과 성전 재건을 제대로 돕지 않으면 바사 제국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이 임할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닥사스다는 모든 왕들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세상 군왕들 중 두려워할 만한 자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닥사스다보다 더 높고 위대한 권세로 그의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시고 역사를 이끄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 지점이 있습니다. 분명 아닥사스다가 내린 조서의 내용이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우호적인 내용인 것은 맞지만, 굳이 ‘세속 군왕의 조서’, ‘세속 국가의 지지’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 일하시고 역사하셔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왕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주고, 이왕 하나님의 권세를 보여주실 거라면, 굳이 ‘세속 군왕의 조서’ 따위를 통해서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백성을 지배하는 바사 제국을 완전히 없애버리시고, 하나님 백성들을 회복시키는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굳이 ‘왕의 조서’의 힘을 빌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랍고 기적적인 역사로 예루살렘과 성전을 회복시켜주시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역사는 단순히 ‘에스라가 활동하던 시대’ 안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역사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구별하여 세우신 언약 백성을 향한 ‘구속의 역사’입니다.
에스라서만 읽을 때에는 ‘성전의 완공’이라고 하는 하나의 ‘목적’이 성취 되면 그것으로 이야기의 끝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성경이 기록하고 있고,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어떤 ‘목표’,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시는 구속 역사의 ‘과정’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발견하고, 붙들고, 걸어가길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포로귀환과 성전의 회복에 대해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단순히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건물 성전이 완공 된다고 하여 성취되는 약속이 아니지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사 제국과 아닥사스다에 의해 지배 당하는 현실 중에도 하나님께서 언약 하신 바를 따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한편으로 보자면 여전히 그들은 바사 제국의 식민지 상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이방 나라의 지배 아래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것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그 현실 뒤편에서 여전히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때로는 우리가 기대한 방식대로, 때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르게, 때로는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때로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변함 없이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동일하게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비록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을 둘러싼 현실은 세속 국가나 정부, 국가의 법과 제도, 방송과 문화 콘텐츠 등과 같은 것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성경적 가치관을 인정해 주지 않고, 지지해 주지도 않는 듯이 보입니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영향력은 날로날로 줄어만 가는 거 같고, 오히려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난과 손가락질만 더해져만 가는 거 같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기억합시다. 이런 암울하고 불확실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백성과 자녀, 당신의 교회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던 에스라를 위해 그의 길을 열어주셨듯이, 오늘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주신 사명을 차분하고, 묵묵하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이때 교회와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의 문제들 앞에 일희일비 하며, 좌로 갔다 우로 갔다 방황하고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걸어가야 믿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다짐했던 에스라처럼, 이 시대의 교회 역시도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기 위해 주께서 가르치신 바를 성실히 가르치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기본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때 교회는 현실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를 만나게 됩니다.
비록 그 길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것과 같이모든 것들이 형통하게 풀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순간순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1. 눈앞에 펼쳐진 현실로 인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현실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2. 하나님의 인도를 의지하는 가운데, 교회와 성도로서 걸어가야 할 길과 감당해야 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도록.
3. [주보 기도제목] 고신 교회가 바른 복음을 선포하고 세상의 원리를 따르지 않도록 지켜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