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30(금)
사무엘하 15:13-23(구약p.486)
<본문>
◎ 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6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해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자기 아버지 다윗에 대한 반역을 꾀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장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비록 그 구체적인 내용이 압살롬의 반역에 관해 기록하고 있지만 지금 다루어지고 있는 사건 역시도 ‘다윗 관련 기사’라고 하는 더 넓은 맥락 아래에서 살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다윗 왕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타락하고 무너져 가는지 보여주는데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이후 다윗에게는 더 이상 자신의 가정과 왕국 안에 일어나는 죄의 문제를 다룰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로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범한 사건에 대해서 다윗은 암논의 죄를 정당하게 다루지 못하고 그저 쉬쉬하고 넘어갔습니다. 다윗 스스로 간음을 저지른 상황에서 자기 아들 암논의 성적인 범죄를 정당하게 다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다윗은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한 일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합니다. 압살롬의 죄를 묻고 그 죄를 정당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그저 압살롬을 찾지 않는 것으로, 가까이 두지 않는 것으로, 거리를 두는 것으로 미적지근하게 그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이러한 태도는 압살롬 안에 있는 죄를 더 키우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말을 범한 암논을 제대로 징계하지 하지 않는 다윗으로 인해 압살롬은 암논을 향한 복수심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복수심을 암논을 살해하는 것으로 표출했습니다. 비록 사랑하는 여동생을 위해서 라는 나름의 명분으로 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 특히 형제를 살해한 일이었던 만큼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용납 받을 만한 일이라고는 생각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암논을 살해한 이후에 그술 지역까지 도망을 쳤던 것입니다.
압살롬은 형제를 살해한 죄인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일을 저지른 압살롬 역시도 그 사실을 알고 도망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태도는 압살롬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여동생을 위한 복수심으로 한 살해가 정당하다 인정 받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압살롬의 태도가 점점 뻔뻔하고 대범해지기 시작합니다. 장수 요압의 계책으로 인해 다윗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성읍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때도 다윗은 압살롬이 저지른 죄를 정당하게 다루는 절차를 거치지 않습니다. 대신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였지만 가까이 하지 않고 내외합니다.
이 상황에 대해 압살롬은 불만을 가집니다. 비록 예루살렘 성읍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아버지와 대면대면한 상황이 계속되면 자신의 입지가 점점 좁아질 거라 판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준 요압을 다그쳐서 왕 다윗과의 만남을 주선하도록 만듭니다.
비록 억지스럽게 얻어낸 다윗 왕과의 만남이긴 했지만 압살롬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안에는 압살롬이 가지고 있는 외모와 여러 가지 조건들로 인해 그를 칭찬하며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후에 더 이상 다윗과 조우가 없다는 사실은 압살롬을 지지하고 싶어하는 자들로 하여금 확신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도록 만드는 지점이었을 것입니다. 압살롬을 지지하고 싶어도 다윗 왕이 인정하지 않는 자를 전적으로 지지하기는 어려웠겠지요. 그런데 비록 억지스러운 방법이긴 했지만 압살롬이 다윗을 알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압살롬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력으로 모으고 다윗에 대한 반역을 준비합니다. 다윗을 향해야 할 백성들의 마음을 자신을 향하도록 훔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압살롬의 죄성을 복돋우고 더욱 담대하게 악한 길로 들어서도록 한 것은 다윗이 압살롬의 죄를 정당하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암논의 죄를 정당하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를 다루는 힘과 능력을 상실한 다윗 왕국은 결국 압살롬이라고 하는 괴물을 키워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는 다른 일반 세속 국가와 온전히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직분자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드러나도록 하신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곧 이스라엘의 통치 원리는 이 시대의 ‘교회’의 통치 원리와 일맥상통한 면이 있습니다.
교회가 정당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 중 하나는 죄의 문제를 정당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정당하게 다루어 질 때, 교회는 바른 질서 아래에서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가 죄를 정당하게 다루지 못할 때 교회는 점점 변질 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세상의 수많은 다른 기관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겉으로는 규모 있고, 잘 갖추어진 모습이지만 실상은 ‘사단의 회’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자기 자녀들의 죄의 문제, 자기 백성들의 죄의 문제를 정당하게 다루지 못했던 이유는 다윗 스스로 경건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와 직분자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나타나는 통치와 다스림은 그 통치와 다스림을 발휘하는 직분자와 기관의 경건과 거룩에 의존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드러내야 할 직분자와 기관이, 그에 합당한 경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할 때 다스림을 발휘하는 자들 스스로도 죄의 문제를 정당하게 다룰 수 없고, 그 다스림을 받는 자들 역시도 설득력을 얻지 못합니다.
<기도제목>
1. 이 시대의 교회들이 ‘죄’의 문제를 정당하게 다룰 영적인 힘과 능력을 갖추도록. 권징이 정당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2. 권징을 관장하는 직분자들이 경건의 능력을 더하여 주시고, 교회를 바르게 다스리고 이끌어 갈 수 있도록.
3. [주보 기도제목] 장기 입원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오지 못하는 교우와 가족들에게 힘과 믿음을 더하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