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1(토) 새벽기도
본문 - 누가복음 16:19~31
<본문>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본문해설>
1. 말씀 때문에 가난하게 된 자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배가 고파진 경우가 있는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배가 고파진 경험이 있는가요? 오늘 말씀은 바로 이런 경우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의도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선 나사로는 거지였습니다. 거지에 해당하는 이 단어는 원문으로는 가난하다입니다. 그런데요. 누가복음에서 가난한 자는 거의 대부분 긍정적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 20절에서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셨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여러 경우로 인하여 가난에 처하게 된 자가 오늘 말씀의 거지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나사로라는 이름도 보세요. 이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 하자면 나사로는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서 이름까지 말한 것은 나사로라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것을 믿고 살아간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가난하게 된 자였기 때문입니다. 말씀 때문에 가난하게 된 자들이 말씀에 대한 순종 때문에 가난하게 된 자들이 우리 시대에 있음을 예수님은 교훈해 주십니다.
2. 점점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부자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였습니다. 특별히 어제도 살핀 것처럼 바리새인들은 비웃었습니다. 재물보다는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말하였을 때에 바리새인들은 비웃었습니다. 이런 비웃음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난하게 된 자를 그때 그 당시의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돌아보지 않았기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하나님과의 거리를 말하였습니다. 부자가 점점 더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짐을 말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세요. 나사로는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이름을 가진 자입니다. 이 나사로는 처음에 어디에 있습니까? 부자의 대문 앞에 있었습니다. 부자의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우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 예수님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셨지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힌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부자의 대문 앞에 있는 나사로는 어쩌면 예수님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나사로를 내버려둔 것 예수님을 내버려둔 것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부자와 나사로의 거리는 부자와 예수님의 거리를 보여줍니다.
좀 더 나아가면 어떠합니까? 부자와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죽고 나니 부자는 음부에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갔습니다. 죽고 나니 부자와 나사로의 거리는 더 멀어졌습니다. 이 거리가 얼마나 큰지 26절 말씀을 보면,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 서로 간에 왕래가 불가능하다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점점 더 거리가 멀어져간다는 것을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땅에서는 문을 사이로 두고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어서는 서로 간에 왕래가 불가능할 정도로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줍니까?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의 비참함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보다 돈을 사랑하는 자들은 점점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우리 예수님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듯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재물을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으니 이웃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이 땅에서 수많은 나사로들이 있는데, 이 나사로들을 돌아보지 않으니 점점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재물을 가진 자들은 재물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였습니다. 열가지 계명의 정신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그들은 생각해야 하였습니다. 우리 시대로 말하자면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들의 비참함입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부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부하니 자기 눈 앞에 있는 이웃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비웃었습니다. 비웃는 자들 결론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유의 말씀처럼 더 이상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기>
1.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이웃을 향하여 자비와 사랑을 베풀게 하소서.
2. 교회공동기도제목(토) - 주일성수할 수 있는 믿음과 여건을 주시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