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5(월)
신명기 6장 1-9절(구p.271)
염덕균 목사
<본문>
◎ 1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해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한 말씀인데요. 유대인들에게 ‘쉐마’라고 알려져 있는 이 말씀은, 우리가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암송하듯이, 유대인들이 집회를 가질 때마다 온 회중이 함께 암송하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왜냐하면 오늘 본문이 요구하는 바가, 곧 구약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내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을까요? 우선 오늘 말씀은 본격적인 ‘쉐마’의 말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를 말해줍니다. 본문 3절 말씀인데요.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과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신 6:3)
혹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지금 이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조건’으로 제시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잘 지키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그들에게 복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이렇게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큰 오해입니다. 나아가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구약이 말하는 ‘율법’과 신약이 말하는 ‘복음’을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말씀을 잘 지키는 것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께서 그에 합당한 ‘보상’으로 복과 은혜를 주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말씀을 따라 사는 그 삶이, 곧 그들에게 복과 은혜가 가득한 삶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모든 인간들이 각자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좇으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아마 그러한 삶은, ‘동물의 왕국’과 차이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것을 빼앗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우위를 점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투고, 해하고, 견제하는 상태. 바로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곧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 이방 족속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족속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인 것이지요.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주시고, 그것을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이유가, 바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울타리 아래에서 복되고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이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계명을 주신 의미를 밝히 드러내 주신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씀을 말씀하시는데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4-5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가장 첫 계명,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이 명령은 무언가 일방적이고, 부당하게 여겨집니다. 어떻게 ‘사랑하라’라는 것을 ‘명령’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기 백성에게 ‘사랑’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뭔가 고압적이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이상한 하나님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사랑’이라는 개념을 이 시대의 문화와 가치에 따라서 생각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그저 낭만적인 감정 정도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대 문화와 종교, 그 가운데 나타나는 이방신들의 요구 등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명령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명령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방 종교에 나타난 신과 신도들의 관계는 철저한 ‘거래 관계’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이 신에게 무언가를 내어주면, 신도 인간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바로 이방 종교의 신과 신도의 관계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이들의 관계는 서로를 향해 ‘헌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은 철저한 ‘거래’와 ‘소비’의 관계입니다. 내어주는 만큼, 돌려받아야 하며, 혹 그것의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은 인간을 향한 불행과 저주로, 인간은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러한 ‘거래’의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의 관계’, ‘교제의 관계’, ‘사귐의 관계’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첫 번째 계명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계명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바로 ‘위선’이라는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여러 가지 계명을 지키는 와중에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계명은 지키지만, 억지로 지킬 때, 계명은 따르지만, 사랑이 없이 행할 때, 우리는 ‘위선’과 ‘기만’의 죄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계명을 따라 살기 위해 애쓰고 몸부림 칠 것입니다. 사랑 받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이 요구가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명령인지를 마음 속 깊이 깨닫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바로 그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진 다양한 ‘계명’들을 ‘감사와 기쁨’ 가운데, 기꺼이 순종하도록 해주는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하길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동력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자들이 되도록.
2. [주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바른 고백을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