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 23일(토) 새벽기도
본문: 이사야 40:1-11
<본문>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본문해설>
성탄절은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을 함께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왜 기쁜 소식이 됩니까?
땅에서 함께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는 사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말씀은 하나님께서 오셔서, 이 땅 백성을 위로하실 것이라 말씀합니다.
포로되어 노역하는 때가 지났고, 죄악이 사함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일을 하나님께서 오셔서 직접 이루셨는데,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구원을 향한 뜻과 말씀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사죄의 은혜입니다.
1. 참된 위로의 소식: 사죄해주시는 왕이 오심
오늘 말씀은, 포로된 백성에게 보내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전체를 보통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1-39장을 전반부, 40부터 끝까지 후반부입니다.
전반부는 보통 심판에 대하여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후반부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더 많이 말씀합니다.
그래서 후반부 첫 메시지부터, “위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렇다면, 포로된 백성에게 위로는 무엇인가요?
잡혀간 곳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
외적인 돌아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최종적이거나 포로 회복의 중심이 아닙니다.
포로됨의 근본적인 이유가 해결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로는 죄 때문에 일어났고, 포로의 회복은 죄사함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백성의 죄를 사해주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위로’입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령을 먼저 보내십니다.
전령보다, 그 메시지, 전하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전령의 소식은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포로된 백성에게 오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십니다. 좇겨난 백성에게, 왕이 돌아오시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포로 회복입니다.
이 전령을 향한 말씀을 신약은
예수님 앞서 활동한 세례 요한에게 적용합니다.
바로 예수님은 왕이시고, 세례 요한은 왕을 소개하는 전령이었습니다.
요한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죄의 포로된 자를 구원하신다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당대 유대 지도자들은 참된 해방과 자유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관심과 달리, 예수님은 포로된 백성을 완전히 회복시키십니다.
메시아로 오신 왕께서 직접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은, 주께서 무엇을 해주시는 지 정확히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이시기에 ‘죄’를 사해주십니까?
죄를 사해주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있지 않으십니까?(마 9:6)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에, 하나님의 길을 여는 전령이 보내시는데,
신약은 그 전령이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대로를 여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준비한 길로,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사람의 몸으로 오신 성자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십니다.
모든 율법의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백성 대신에 저주를 받으신 죽음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의는 백성에게 주시고,
자신은 우리의 모든 불의와 불법과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피값으로 죄악에 팔린 백성을 모두 사시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천국 백성으로 살도록 합니다.
2. 우리의 참된 위로
여러분, 우리의 참된 위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를 얻습니까? 무엇을 참으로 기뻐합니까?
예수님 당대 유대 지도자처럼, 혹시 예수님께서 무엇을 해주시는지 ,
누구이신지 관심이 없는 우리는 아닌가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함께 흥겹게 캐롤 부르고,
산타를 기다리고, 선물을 나누고, 한 해를 돌아보는 것에만
위로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아니면, 그저 내가 가진 것을 더 움켜 쥘 수 있고,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닌가요?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 위로라고 가르쳐 주십니까?
우리의 참된 위로는 무엇입니까? ‘죄 사함’입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 위로입니다.
죄로 인한, 사망의 포로된 상태에서 벗어나는 사건.
바로 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사건이야말로,
참 위로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문은 이렇게 문답합니다.
문: 사나 죽으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사나 죽으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시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성령으로 그분은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주시고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분을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바로,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니오,
오직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의 참 위로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며,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기쁨, 우리의 위로,
참 하나님이시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죄사함’입니다.
2023년 성탄절을 맞이하며, 죄사함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기도제목>
1.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받는 참된 위로인 죄사함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성탄절에 다른 무엇보다도, 오직 주의 은혜로 위로 받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2. (교회 공적 기도 제목) 대강절에 그리스도를 소망하여 위로와 힘을 얻게 하시고 복된 예배를 사모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