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7(화) 새벽기도
본문 - 요한계시록 1:9~20
<본문>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본문해설>
1.
요한계시록은 일차적으로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쓰여진 편지입니다. 4절과 11절의 말씀을 보듯이, 예수님은 요한에게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보여주셨고 그리고 보여주신 그 내용을 두루마리에 기록하라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의 처지는 어떠하였을까요? 요한계시록 2~3장을 보면 일곱교회가 하나씩 하나씩 나오지요. 이들 교회의 면면들을 오늘 집에 가셔서 차근 차근 읽어보십시오. 결코 일곱 교회가 처한 환경이 쉽지 않습니다. 환난이 있었고, 거짓 교훈들이 있었고, 이런 현실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요. 요한은 자신 역시 똑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으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9절을 보세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일곱 교회들에게 환난이 있었고, 그러하니 일곱 교회는 참는 가운데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였습니다. 복음의 도리를 붙잡고 살아가는 삶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복음의 도리를 붙잡고 살아가는 삶이 결단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이미 많이 풍족한 시대이지요. 어쩌면 교회 안의 성도들의 어려움이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 안의 성도들이 어떤 현실에서 살아가는지 크게 관심조차 없습니다. 물리적, 혹은 경제적 어려움 말고 실질적으로 믿음의 투쟁이나, 자기들 안에 있는 욕망과 죄성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어쩌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들이 무뎌진 상태로 어쩌면 신앙생활하고 있지요.
우선적으로 오늘 이렇게 기도합시다. 믿음의 투쟁을 해야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직접적으로 환난을 겪고 있는 성도들이 분명 있습니다. 성도들 한 명, 한명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형편을 주님께서 돌아보아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이들을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이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셔서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2.
이렇게 복음의 도리를 붙잡고 살아가야하는 교회 때문에 주신 말씀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런데요.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를 위하여 보여주신 첫번째 내용이 무엇인가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단어 한 가지가 보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은 보여주셨습니다. 11절을 보시면, 요한은 어떤 한 가지를 보았습니다. 4장 1절에서도, 5장 1절에서도 6장 1절에서도 요한은 계속하여 어떤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계속하여 보여주는 진리 중에 첫번째로 보여주시는 것이 매우 중요하겠지요. 첫번째로 보여주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12~20절의 말씀이지요. 요한은 일곱 금촛대를 보았고, 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 같은 이를 보았습니다. 요한이 우선적으로 본 것은 일곱 금 촛대입니다. 일곱 금촛대는 1장 20절을 보듯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일곱 금촛대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세요. 이때의 교회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성도들의 삶이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2~3장을 보는 것처럼 일곱 교회들은 각각의 현장에서 믿음의 투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투쟁에 실패하는 교회도 있었고, 어떤 교회는 칭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어찌되었든, 각각의 교회들은 각각의 현실에서 예수님 때문에 환난을 받아야 하였습니다. 이런 시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를 향하여 요한은 일곱 금촛대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금촛대”의 역할은 빛을 비추어 주는 역할이지요. 즉 요한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금촛대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런 것이지요.
“비록 너희들이 고난과 환난 중에 있다 할지라도 너희들이 가진 본질과 사명이 금촛대이다. 하나님의 빛이 너희들을 통하여 흘러나온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빛이라는 본질과 사명을 주셨다. 비록 너희들에게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너희들이 가지게 된 정체성을 다시금 기억하거라”
이렇게 요한은 격려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요한은 어떻게 말하는가요? 일곱 금촛대 사이에 계신 분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인자 같은 이 곧 하늘에 계신 예수님입니다. 이어지는 14~20절을 보면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요한은 보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 요한을 부르셔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하늘에서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교회들 중에 계셨습니다. 일곱 교회들이 세상의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 중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 중에 계신다는 진리를 예수님은 재확증해주셨습니다.
요한에게 보여주신 것은 일곱 교회들이 자신의 힘으로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빛으로의 사명 때문에 예수님께서 교회들 중에 계시고 교회들이 빛으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우리들이 받는 위로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 중에 예수님이 계시다, 예수님이 계셔서 우리들을 돌보시고 우리들이 빛으로 살아가도록 도우신다.”
3.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살펴봅시다. 교회들 중에 계신 예수님은 그런데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요? 사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하나 하나 다 설명하기란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데요. 그래서 한 두가지만 살펴봅시다. 우선 13절을 보면 발에 끌리는 옷을 예수님은 입으셨고,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서 교회들 중에 계셨습니다. 발에 끌리는 옷은 구약으로 말하자면 제사장의 복장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죄사함의 일을 교회 중에 계속 수행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이 죄와의 투쟁을 하고 죄성과의 투쟁을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니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회개하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또한 중보자로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것을 보여주신 것은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언제든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으로 가라는 뜻이지요.
16절도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의 입을 말하고 있는데요. 예수님의 입에서 무엇이 나오는가요.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칼과 같은 말씀으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고 계십니다. 수술용 칼과 같은 말씀으로 성도들을 치료하시고 성도들을 회복시키는 일을 하신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예수님은 교회들 중에 계셔서 교회를 다시금 사명자로 세우시고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비록 교회들이 고난과 환난 중에 서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그들 중에 계신다는 진리를 붙잡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렇게 기도합시다.
<기도하기>
1.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형편을 주님께서 돌아보아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이들을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이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셔서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2. 교회공동기도제목(화) -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교우들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우들을 위로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