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0월 27일(금)
갈라디아서 5:2-12 (신약 307)
<본문>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해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바울은 매우 단호하고 확실한 어조로 말씀합니다. 지금 바울이 말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른 어떤 가능성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만약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할례를 받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라 말씀합니다(2절). 2절을
1절 말씀에 빗대어 말씀하면 할례를 받는 것은 자유의 옷을 입고 다시 종의 멍에를 짊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그 자유의 옷을 다시 더럽히고 가치 없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는데 할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이 사역을 가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할례라는 것은 유대인이 따르는 종교적, 사회적 풍습 정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4절에서 할례는 곧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할례를 받는 다는 것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진다는 의미입니다(3절). 할례를 받는 사람은 다시 옛 언약,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율법으로
돌아간 자는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할 의무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례를 통해 율법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자기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율법의 짐을 다시 짊어지고 허덕거리는 것입니다. 율법 전체를 지킬 수 있는, 그리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2:16에서 이미 이 사실을 확실하게 선언하였습니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타락한 우리의 본성은 날마다 자기
자신을 정죄하거나 다른 이를 정죄하며 자기를 자랑하고 의지하려고 합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의지하는 자는
결국 예수님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예수님과 그분께서 행하신 사역과 아무 관계가 없어집니다. 이는 너무나 심각하고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게 될 것. 이는 예수님이 없는 자기를 위한 복과 은혜를 말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복과 은혜를 자기 안에서 찾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먼저는 불만족과 불안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자기를 붙들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자기 자랑과 자기 의로 충만한 교만입니다. 그러나 이 둘의 본질은 같습니다. 예수님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자기 만족을 찾고, 예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는 성령님으로 말미암는
믿음으로 의의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라고 말씀합니다(5절).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행하는 믿음 뿐이라고 말씀합니다(6절). 예수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습니다. 오직 받은 사랑에 감사하여 행하는 믿음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을 은혜로 받고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우리를 아무 대가나 조건 없이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은,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자기 행위에 대하여 칭찬과 인정을 바랍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행하지만 우리의 본성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오히려
세상보다 교회 안에 이런 거짓 가르침과 율법주의가 더 많습니다. 복음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자기 의, 자기 자랑, 자기 만족을 교묘하게 숨긴 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7,8절에서 우리에게 호소합니다.
갈5: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갈5: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그러면서 9절에서 우리에게 적은 누룩의 율법주의도 결코 용납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9절). 우리 안에 있는 율법주의의 가능성과 싸워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율법주의의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합니다. 날마다 우리가 예수님, 또한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여기고 멀리하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율법주의, 자기
의와 자기 자랑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하고 의지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우리 삶이, 우리 마음과 생각이 적은 누룩 만큼이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의지하게 되면 반드시 우리는 율법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갈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그러니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율법주의로 유혹하는 것을 단호하게 베어 버려야
합니다(12절).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묵상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으로 충만해야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율법주의의
본성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만을 의지할 때 우리는 하늘
아버지를 참으로 사랑하고, 그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기도제목>
1. <말씀을
기억하며> 자기 의와 자기 자랑에 빠지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은혜만을
의지함으로 참 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2. <주보
기도제목> 복음에 합당한 삶을 회복케 하시고, 교회와
신앙을 허무는 이단을 경계하고 이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