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9월 28일(목) 새벽기도
본문: 잠언 26:1-10
<본문>
1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4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5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6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7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8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10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해설>
잠언 25장에서 29장까지는 솔로몬의 잠언을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입니다. 25:1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유다 왕국과 히스기야는 나라의 중심이 지혜,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는 인간의 처세술이나 성공방법, 생존의 길과 같은 정도가 아닙니다. 한 개인으로부터 나라 그리고 온 세상이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진리입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붙잡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미련한 자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미련은 지식이 부족하다거나 머리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죄로 완악하여서 회개하지 않는 자는 미련한 자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허나 자신의 죄와 허물을 반성하고 회개하는 자들은 영예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련한 자들이 영예를 가지는 것은 해를 줄 뿐입니다. 26:1을 봅시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의 여름은 뜨겁고 건조합니다. 추수 때에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영예로운 자리, 이는 직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른 미련한 신하는 ‘여름의 눈’과 ‘추수 때의 비’처럼 비정상적입니다. 농사를 망칠 뿐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2절, 까닭 없는 저주, 공의롭지 못한 저주를 말합니다. 그런 저주는 성취되지 않습니다. 마술적인 저주나 축복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여호와께서는 미련한 자를 벌과 재앙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그것이 벌인지 깨닫지 못합니다(26:3). 그리고 미련한 자들이 말하는 논리로 대답하지 말라고 합니다. 4절,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진리를 호기심이나 사색 정도로 여기는 미련한 자에게는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말에 동의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들의 미련함을 따라 대답하면, 대답하는 사람도 똑같이 미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련하여 알지 못할 때에는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대답해 주어야 합니다. 5절입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대답해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련한 자를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미련한 자가 되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
하지만 미련한 자들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미련한 자들에게 발등을 찍히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지요. 미련한 자에게 일을 맡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가 전하거나 맡길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의 다리와 입은 올바른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6:7은 그 사실을 말씀합니다.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겉으로는 미련한 자도 지혜로운 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련한 자를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만 됩니다. 그들은 맡은 일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9절도 봅시다.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위험하다는 것이지요. 10절도 봅시다.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의미가 모호하게 보이는데요, 히브리어 원문을 보시면 조금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영어 성경이나 다른 성경도 도움이 되는데요, “미련한 사람이나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하는 것은 닥치는 활을 쏘는 궁수를 고용함과 같다.”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게 보입니다. 궁수가 되려면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한데, 훈련을 하지 않은 행인에게 활을 맡기는 척처럼, 미련한 자들은 위험하다는 의미입니다.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를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들도 지혜로운 것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지혜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님 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려는 것을 선호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말씀으로 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아는 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미련한 자이지요. 미련한 자는 여호와께 나아오지 않습니다. 그 자신이 가장 지혜롭기 때문에 여호와를 의지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호와는 그들과 함께 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에게 직분을 맡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아무에게나 닥치는 대로 활을 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차이는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있는가 하는 겁니다. 단지 말씀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미련한 자들을 멀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나아가고 그 말씀을 붙잡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추석 명절이 시작되는데요, 함께 모이는 가족들과 이 지혜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즐기고 감사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 교훈하고 세우는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지혜롭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말씀을 신실하게 고백하고 붙잡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2. 주보에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명절을 맞아 오고 가는 길을 지켜주시고, 가정기도회로 모여 은혜와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