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사는 삶(Daily devotion) - 10월 4일(화)
<생각하기>
한 가지 더 생각해 볼게 있다면 긍휼의 범위입니다. 이 긍휼의 범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끼리끼리 죽이 맞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호의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원수도 사랑하고 그들이 주릴 때 먹이고 헐벗을 때 입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원수도 긍휼의 범위에 속합니다. 또한 구약의 율법에서는 어미 소와 새끼 소를 한 날에 잡지 말라. 혹은 어미 소의 젖에 새끼를 삶지 말라면서 한 날에 죽이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는 만물에 대해서도 부드럽고 넉넉한 마음으로 항상 관용하며 살펴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긍휼의 범위입니다. 즉 긍휼의 주제는 우리의 삶에 전반적인 부분을 다 다루고도 남을 수 있을 만큼 크고 넓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되며 궁극적인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를 결국에는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궁극적으로 세상의 동의와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역사 속에서 이 세상은, 아니 사단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빠진 긍휼은 가짜이며 위조품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참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좀 더 나은 환경, 교육, 혹은 정치적 자유, 육체적인 자유를 얻게 한다 한들, 그 결국 영혼이 영원한 멸망과 지옥에 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면, 이것은 진정한 긍휼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긍휼을 행하는 자, 적어도 긍휼을 행하는 교회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가 없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주는 것이 참된 긍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묵상하기> : 로마서 10장 13-15절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기도하기>
주님, 내(우리)가 구원을 얻은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라, 나(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복음 전파자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기에, 이것이 주님의 긍휼임을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기에 전함을 받은 나(우리)도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하시고, 그 복음을 들은 자가 주님의 자녀가 되는 생명의 역사를 보게 하소서.
또한 복음 전파자들의 수고에 대해 격려하고 중보할 수 있는 중보자가 되게 하소서.
<순종하기>
1>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자를 살펴봅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친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 대상을 확장하시면 긍휼의 대상이 보일 것입니다.
주님의 온전한 긍휼이 필요한 그를 위해 기도하고,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복음을 전할지 결단하고, 결단에 순종하는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전합시다.
2> 생각하기에서 보았듯이, 긍휼의 주제가 삶에서 전반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긍휼이라는 주제를 붙들고 사회의 모든 상황들에 소금과 빛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진실한 교인이 되는 것과 건강한 시민이 되는 것은 절대로 상충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신실한데 세상에서는 아니라면, 이미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이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균형잡힌 귱휼자’인지 자신을 돌아보아, 균형을 잃은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기록해보시다. 그리고 교회의 안팎에서 ‘균형잡힌 긍휼자’가 되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