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3월 20일(수) 새벽기도
본문: 마가복음 14:1-11
<본문>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해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행하시는 사역을 보면서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논쟁하시고 심지어 성전에서는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면서 하신 말씀들을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더우기 사람들로 부터 인기도 치솟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11:8을 보시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마치 왕이 입성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산헤드린 공회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험한 인물로 여겼습니다.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빨리 예수님을 죽이려는 흉계를 꾸밉니다. 11:18에서도 이들은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토록 죽이고 싶어하는 걸까요? 전통적인 질서를 깨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율법과 성전을 무시하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14:1을 보시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혹시나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해서, 예수님을 잡는 시기를 미룹니다. 만일 민란이 일어나면, 로마 군대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은밀한 방법으로 하기를 원했던 겁니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흉계를 꾸민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생각과 계획이 악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에 앞서,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지를 살펴야 했습니다. 그 말씀이 틀리 않았다면 존중하고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외치고, 말씀을 따른다고 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자리와 권력을 더 탐하고 있었던 겁니다. 말씀을 잘 알고 있다는 당대 지도자들의 태도와 3절부터 나오는 한 여자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사람들은 향유를 허비한다고 화를 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14:3-9).
아마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 이유를 듣고서 기름을 부었을 겁니다. 물론 이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다 이해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헌신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다 받아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기꺼이 드리면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헌신을 당신의 죽으심과 연결하셨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말씀을 따르는 삶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값비싼 향유를 허비하였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5절,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기까지 합니다. 가난한 자를 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위선입니다. 그래서 앞서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위선을 지적하신 적이 있습니다. 12:40입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라.”
이것은 가룟 유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10절을 보시면,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망한 겁니다. 왜 이해하지 못했고 실망했을까요?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는 것 같으나 실상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바람과 뜻과는 다른 예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실망하고는 배반하게 됩니다.
당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세워진 성전 건물만을 붙들고 있는 당대 지도자들의 어리석음! 그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예수님뿐 아니라 하나님도 바르게 섬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저 외형적인 모습만 그러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하는 듯이 행동하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위하는 척하고 있는 외식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살핍시다.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경험에만 머물러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우리 시대에는 도무지 맞지 않는 말씀 처럼 보입니다. 사실 그래서 예수님에게서 멀어져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그리스도의 죽으심에도 참여하고, 신실하게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 기꺼이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것, 희생과 헌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사는 삶, 이 삶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을 가까이 하여 더 큰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오직 주님 만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2. 주보에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질병과 사고로 입원과 치료 중에 있는 교우들과 낙심 중에 있는 성도를 위로하고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