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3월 21일(목) 새벽기도
본문: 마가복음 14:12-25
<본문>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해설>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단지 한 사람의 삶이 바뀌는 사건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로마의 권력과 결탁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번 그 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어 준비하게 하시고는,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을 매년 기념했는데요, 특히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어린양의 피와 구원이라는 이 두 단어를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유월절의 참된 의미를 성취하시려고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식사 중에 예수님은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14:18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예수님을 팔아 넘긴하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근심합니다. 그러면서 대답합니다. “나는 아니지요?” 20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에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은 가족이거나 매우 가까운 관계입니다.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야 할 가족. 게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고 고백하는 절기,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인 유월절이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 감사의 절기에,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있던 가족이 배신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자신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는 결코 아닙니다!!!” 가까운 친구가, 가족이 배반합니다. 함께 구원의 은혜를 나누고 감사하던 가족이 배반합니다. 마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유다가 바로 그 배반자라고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심지어 마태복음 26:25을 보시면, 유다의 태도는 너무나 뻔뻔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팔자가 있다고 하셨을 때, “나는 아니지요?”라고 대답합니다. 친구와 가족의 배신, 너무나 큰 고통입니다. 게다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 그들을 위해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걸어 가시는 예수님에게는 너무나 큰 고난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께서 가시는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4:21 볼까요.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너무나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배반을 당하고, 그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았던 길이지만, 예수님을 기꺼이 그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그러나 배반한 유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우리는 그의 인생을 잘 압니다. 결국 유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보고는,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맙니다. 우리는 그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회개하였는지 아닌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불쌍한 인생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따라 다녔고,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배반했습니다. 이적과 놀라운 능력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지 않는 이적과 능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마가는 이 만찬을 기록하면서,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완전하게 성취하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함께 나누었던 빵을 들고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 ‘당신의 몸’이라고 하십니다. 또 포도주 잔을 가지시고는 ‘당신의 피’라고 하십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이 이스라엘이 죽음을 피하게 했던 것과 같이, 예수님 당신께서 그 어린양이 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14:24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언약의 피’ 우리가 믿음으로 그 잔을 마실 때, 바로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피를 흘리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빵과 잔을 나누는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유월절 식사의 의미를 새로운 시대에는 성찬의 방식을 통해 성취함으로 계속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5절 봅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제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무슨 뜻이죠?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기다리신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기억하는 성찬을 행하지만, 단지 이 땅이 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힘들고 어려운 삶, 고통, 질병, 상처가 여전히 있지만, 그런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완전한 화평이 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다리라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은 바로 그날을 기다리며 행하는 소망의 식사라는 것을 잊지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합시다. 그리고 감사합시다.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행하신 일,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를 위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은혜를 기억합시다. 말씀과 성찬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진리입니다. 우리의 입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찬송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쏟아 부으시는 진노의 폭풍, 사실은 우리가 받았어야 할 바로 진노를 예수께서 짊어지시고, 우리에게는 죄 용서의 기쁨을 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찬송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 복음이 유일한 위로라는 진리를 기쁘게 고백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신 예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기다리게 하소서. 우리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2. 주보에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돕는 교회, 선교사, 기관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세워진 목적에 따라 바르게 섬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