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2월 20일(화)
마가복음 6:45-56 (신약 64)
<본문>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53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해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제자들은 재촉하여 건너편 벳새다로 보내셨습니다(45절). 오병이어라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험에 대해 서로 나눔을 하면서 그 기쁨과 영광을 함께 나누고,
가능하면 그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경배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아마
제자들의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무리를 정리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틈을 주지 않으시고 벳새다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46절은 예수님께서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마치 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 그저 평범한 일상인 것처럼 여기시며 예수님께서는 은밀하게 하늘 아버지를 만나러 가십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6장에서 들떠 있는 제자들을 계속 차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는 기적 자체가 아니라, 사명과
사역 자체가 아니라 자기를 보내신 하늘 아버지께 오히려 집중하시고, 동일하게 보냄을 받은 제자들이 자기를
보내신 예수님에게 집중하게 하십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예수님께 보냄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과
능력으로 충만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목적은 거기에만 있지 않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하늘 아버지를 가까이
하는 것이 그 중요한 목적입니다. 우리에게 진짜 영광과 기쁨은 어떤 대단한 일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잠잠히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분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다시 제자들을 향합니다. 제자들은 거센 바람 때문에
힘겹게 노를 저으며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셨는데, 마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지나쳐 가시려 했다고 말씀합니다(48절).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께서는 원래 힘겹게 노를 젓고 있던 제자들을 지나쳐 가시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말 그대로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들의 지혜와 상식에서 바다 위를 걸어올 수 있는 존재는 유령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49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안심시켜 주셨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잔잔해 졌습니다(50-51절). 그리고
본문은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막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예수님께서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걸으신 것은 예수님에게 결코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이나 더 되는 사람을 배 부르게 먹이시고 열 두 바구니를 남기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속한 것으로 하늘 나라의 양식을 우리에게 먹이고 입히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유한한 우리가
처해 있는 이 물리적 공간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중력의 법칙
위에 서 계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그 질서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주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제자들이 그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그 마음이 둔해졌다는 것입니다. 둔해졌다는 것은 무감각해지고, 여전히 자기들의 상식과 감각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이런 연약함을 깨뜨리기 위해 일부러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걸어 오셨고 또 일부러 힘겨워 하는 그들을 지나치려 하셨습니다. 이 땅의 상식과 경험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상식과 경험이 침투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자기 삶을 뚫지 못하도록 이 세상의 가치로 완벽하게 자기를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둔함이고, 무감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 옆으로 마치 산책하시듯이
바다를 걸어가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식으로 이 땅의 상식으로 가득한 제자들에게 침투해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힘겨워 하는 제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식으로 가득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 인생을 풍랑이 없는 바다로만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큰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로 일부러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은혜가
무엇인가요? 우리 인생에서 모든 풍랑이 피해가는 것인가요? 이는
확실히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는 그 큰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은 인생 가운데 그
풍랑 위를 걸으시고, 또 잔잔케 하시는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신뢰하고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놀랄만한 엄청난 기적에 너무 들뜰 필요도 없고 세상이 피하려 싶어하는
무서운 환난에도 너무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엄청난 기적 앞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고, 무서운 환난 앞에서 우리는 그 중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저 기적만을 좇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는 예수님께 주목하십시오. 우리의 삶이 예수님으로 충만하기 위해 그분의 말씀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 그저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모든 은혜와 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는 분임을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 경험하고 누리는 둔한자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늘 깨어 있는 자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말씀을 기억하며>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를 가까이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복을 구하는 둔한자가 아닌 깨어 있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 <주보 기도제목> 환우들과 그 가족들, 어려움 가운데 있는 교우들이 주를 바라보며 위로를 얻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