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3(금)
마가복음 7장 24-37절(신p.65)
염덕균 목사
<본문>
◎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라
<해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이후, 이제 예수님께서는 사역하시는 지역을 유대 지역이 아니라 이방 지역으로 옮기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예수님 주변에 모여 들었고 예수님께서는 이방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치유와 회복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조차도 예루살렘에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몰려와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에 딴지를 걸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다는 이유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거룩하지도, 정결하지도 않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은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을 부정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가 하나님과 상관 없는 자들임을 드러내는 행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지도와 다스림 아래에 있는 유대인들조차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지 못하도록 만들고 훼방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방해 공작이 이방 지역에서 조차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뚜렷한 대조와 더불어서 하나의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원래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던 유대인들, 그 중에서도 유대인들의 지도자격에 해당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방 지역에서 예수님께로 찾아와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는 자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6:53-56).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오늘 본문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데요.
예수님께서는 ‘두로’라고 하는 지역으로 이동하여 아무도 모르게 하시기 위해서 한 집에 들어가셨습니다(24절).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머무르신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헬라 사람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 하나가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녀에게는 어린 딸 하나가 있었는데 더러운 귀신이 들려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여인은 자기 딸을 고쳐주시기를 엎드려 간구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요청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너무나 의외입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7절) 지금 예수님께서는 엎드려 간구하는 여인의 간구를 거절하십니다. 그런데 그 거절하시는 내용이 자칫 ‘모욕적’으로 들리기까지 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속한 유대인들을 ‘자녀’로, 수로보니게 여인을 비롯한 이방인들을 ‘개들’로 표현하고 계시는데요. 예수님의 대답을 풀어서 설명하면 “내가 비록 이방 땅에 와 있지만 내가 먼저 돌보고 회복시켜 줄 대상은 너희 이방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다! 너희에게는 나의 회복을 기대할 만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편으로 보자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는 틀린 내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 이시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자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앞뒤가 안 맞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이방 지역에서 치유와 회복의 일들을 행하고 계셨고, 수많은 이방인들을 회복시켜 주고 계셨으니 말이지요. 그런데 유독 이 여인에게는 ‘유대인이 아니다’라는 기준을 제시하시며, 그녀가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할 입장이 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몰아붙이고 계신 걸까요?
이에 대한 단서는 이어지는 여인과 예수님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예수님의 답변을 들은 여인은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실망하고 돌아서서 예수님 앞을 떠났나요? 아니면 “왜 예수 당신은 다른 사람들은 잘 고쳐주셔 놓고, 왜 저에게만 이렇게 매정하십니까?”라고 따지고 들기 시작했나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 여인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8절)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부정하거나 반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습니다. 자신은 예수님께 간구할 자격도 없고,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치유와 회복 또한,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압니다.
그러나 그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고백하지요.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지만, 예수님의 능력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능력을 부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능력을 높입니다. “부스러기 같은 능력이라도, 주께서는 능히 제 아이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여인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29절) 똑같은 말씀을 마태복음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 예수님께서 그녀의 반응과 대답을 ‘믿음’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예수님의 답변으로 돌아가 볼까요? 왜 예수님께서는 매우 매정해 보이는 답변으로 그녀를 몰아세우신 걸까요? 그것은 이 여인으로부터 이 고백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바로 이 ‘믿음의 고백’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여인을 통하여 무엇이 ‘믿음’인가를 드러내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올라온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정결 예식’을 잘 지키는 것이, ‘믿음’과 ‘신앙’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들을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들’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이 보여준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녀는 자신의 자격 없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격이 없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능력과 은혜가 더 크게 나타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고백을 통해서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거짓 된 믿음’을 고발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을 소유한 자들인가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이해하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1.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음을 기억하며, 겸허함과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2. [주보] 국가의 위정자들이 사리사욕을 버리고, 국민의 생활과 안전을 위해 섬기며, 분열과 갈등을 그치도록.
3. 오늘부터 시작되는 구역봉사자 교육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