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2월 14일(수) 새벽기도
본문: 마가복음 5:21-34
<본문>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해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믿는다는 믿음의 내용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당연히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삼위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말씀은 믿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인물은 야이로와 그의 딸 그리고 혈루병을 앓아 온 한 여자입니다. 특히 가장 절박하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은 야이로입니다. 그의 딸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었는데요, 예수님 당시의 회당은 단지 종교적인 영역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생활 중심이었습니다. 재판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회당장’은 예배와 관련된 모든 의무를 수행하고, 백성들의 재판도 했었던 ‘회장장’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상당히 높은 직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당대의 지도층,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백성들을 충동질하거나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자, 혹은 정의를 외친다고 ㅎ는 선지자 아니면 민심을 흐트리는 이단 교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중심으로 일하셨기 때문에, 지도층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주 비천하게 보았습니다. 게다가 출신도 이름없는 시골의 목수가 아닙니까!
그런데 회당장인 지도층의 한 사람인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주님께 달려왔습니다. 하인들 중에 한명을 보내어서, 예수님을 다른 사람 몰래 좀 데리고 오라고 시키지 않았습니다. 직접 달려왔습니다. 22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 예수님께 자신의 딸을 구원해 줄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이로의 ‘믿음’을 보아야 합니다. 야이로는 그저 딸의 생명을 구하고자 이름없는 한 젊은 청년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야이로는 성경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역사와 예언에 대해서 박식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시에 일어나고 있는 예수라는 청년에 대해서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요청을 받고서, 딸을 고치시기 위해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십니다. 가는 풍경을 한번 보세요. 수많은 무리가 서로 에워싸서 밀면서 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야이로는 놀라운 일을 목격합니다. 예수님께서 혈루병을 앓아 온 한 여자를 고치시는 사건입니다. 12년 동안이나 혈루병을 앓아 온 여자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혈루병은 부정한 병이었습니다. 누구든지 혈루병 걸린 사람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병으로 인한 고통 뿐 아니라 공동체에서 소외당하는 고통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12년입니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몸의 병으로 마음까지 고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수많은 사람들이 에워싸서 누가 예수님을 만지는지 알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인이 당신을 만지신 것을 아셨습니다. 게다가 그 여인을 ‘딸’이라고 부르셨습니다.34절입니다. “딸아,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너의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기나 긴 고통 가운데 있었던 여인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12년 동안이나 질병의 고통 가운데 있었던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야이로는 바로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집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딸도 나음을 입고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인이 자신에게 손을 댄 것을 왜 언급하실까요? 33절을 보시면, 여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떨고 있는 여인을 부르신 것은, 사람들에게 여인의 믿음을 증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4:35에서 큰 광풍이 이는 중에도 붙잡아야 할 것, 예수 그리스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과 같습니다. 바다도 바람도 순종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5장 앞부분에 기록된, 많은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님의 말씀이 이긴 것도 같습니다. 강하고 크게 몰아치는 세상의 물결, 많다는 것으로 압박하는, 힘과 세력으로 달려드는 세상의 유행과 힘을 이길 수 있는 힘,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뿐이고, 이를 믿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 믿음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눈에 보이는 거대한 물결, 보이는 강력한 힘을 이길 수 있는 것, 믿음 밖에는 없습니다. “딸아!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건강할지어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진심으로 살피시고 사랑하십니다. 바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보살핌과 치료의 손길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녀의 바램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어려움과 고통을 우리 주님께 내어놓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주님을 붙잡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기>
1. 주님의 은혜를 바라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믿음으로 우리 주님을 고백하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건강을 누리게 하소서! 참된 믿음은 우리 주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붙잡고 나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해주소서!
2. 주보에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바른 가르침을 붙잡고 전수하는 교회와 가정이 되어, 맡은 직무를 성실히 감당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