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9(금)
요한계시록 21장 22절~22장 5절(신p.418)
염덕균 목사
<본문>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해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내용을 이미지로 표현해 보자면 ‘찬란함과 밝음’입니다. 21장 23절과 22장 5절에서 반복해서 말해주는 바가 해나 달빛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찬란하게 비치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바로 하늘의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이와 같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인데요.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영광의 광채가 새 예루살렘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의 이러한 표현들은 뭔가 ‘좋다’라는 인상이 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막연하고 뜬구름 잡는 표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성전이 보이지 않는데 바로 예수님이 성전이시기 때문이다’라는 말이나, ‘태양과 달이 필요 없는데 바로 예수님이 빛이시기 때문이다’라는 말 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서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는데요.
우선 오늘 본문 22절 말씀에 “성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성전’이란 어떤 장소를 의미하나요?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고, 바로 그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과 교제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성전은 아무 때나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는 아니지요. 하나님 앞에서 죄의 문제가 해결 되고 정결하게 여김 받은 자들 만이 나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전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하는 자들이 간절히 사모하고 갈망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건물 성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더 이상 ‘건물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늘의 예루살렘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하게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예루살렘에 거하는 성도들은 ‘성전’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과하여 하나님과 만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여 바라보며 교제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이어서 좀 전에 살펴본 것처럼 하늘의 예루살렘 성은 더 이상 해나 달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고 찬란한 빛이 비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빛’은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빛은 ‘진리’, ‘생명’, ‘영광’, ‘아름다움’ 등과 같은 의미들을 품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다른 빛의 근원’들이 필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빛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과 크게 대비를 이룹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광채’를 나타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해와 달을 비롯한 자연만물들이 그러하고돈, 명예, 권세, 힘, 외모, 세력 등과 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도 그 나름의 진리와 생명과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다 ‘참 빛’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범죄와 타락, 그로 말미암은 ‘부패’는 이 모든 것들을 ‘왜곡’시켜 버렸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참 빛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빛의 흔적을 품은 이 세상 ‘다른 것들’로부터 진리와 생명과 만족과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눈이 빛의 흔적을 지닌 것들에 눈이 가리워져서 ‘참 빛’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세상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는 이제 더 이상 ‘다른 광채’들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그 찬란한 빛이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우리의 시선, 우리의 마음을 다른 것들에 빼앗기는 일들이 없습니다. 우리의 눈과 시선이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와 생명과 영광과 아름다움에 고정되어 그것을 온전히 누리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 예루살렘에서 누리게 될 이 영광, 이것은 결코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완성된 형태로의 하나님과의 만남, 온전한 의미로의 빛되신 하나님을 보는 것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서 누리게 되겠지만,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누리게 될 그 영광을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도 이미 맛보고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드리는 ‘공예배’ 시간이 바로 이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누리는 그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자리입니다.
공예배 시간에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누립니다. 또한 공예배 시간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의 진정한 만족과 기쁨과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확인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만약 우리가 공예배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누리지 못한다면 하늘의 새 예루살렘은 우리에게 결코 소망하고 기다릴만한 곳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뻐하고 감사하지 않고, 예배를 통해 이 세상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이 우리 삶의 진정한 만족과 근거가 되신 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경험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하늘의 새 예루살렘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곳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공예배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합시다. 공예배를 통해 우리가 삶의 진정한 만족과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고백합시다. 그렇게 이 땅에서의 삶이 새 예루살렘에서의 삶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1. 공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우리 삶의 만족과 생명으로 삼는, 연습과 훈련을 하도록.
2. [주보] 2023년 한 해를 잘 보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2024년 또한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나아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