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사는 삶(Daily Devotion) - 1월 28일(화)
<묵상하기>
마태복음 9:1-17
<생각하기>
예수님은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고침을 넘어 죄사함의 권세가 예수님께 있음을 드러내신다. 또한 새리 마태를 부르시면서 죄인을 부르러 오신 목적을 밝하시고, 요한의 제자들과 금식 논쟁을 하시면서, 예수님을 통해 들어온 은혜의 복음을 낡은 종교 형식을 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함을 가르치신다.
<기도하기>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불가능한 죄인들에게 온전한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시고,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찾아오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참 진리와 온전한 복음에 날마다 사로잡히게 하시고,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지도 모를 옛 사람의 흔적들을 기경하며 주의 은혜와 복음으로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을 보는 눈이 복음을 통해 열리게 하시고, 주께서 사랑하셔서 함께 부르신 지체들을 보는 눈과 마음이 주를 닮아가게 하시고, 복음에 합당한 새 부대로 날마다 준비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종하기>
1.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교회를 다니고 있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오늘 본문에 등장한 서기관, 바리새인, 요한의 제자들과 같은 낡은 신앙의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의 빛,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 복음으로 깨닫지 못하고 도덕법, 율법,
나의 의와 내 열심을 쌓는 만족에 머물러 있는 모습은 없습니까? 복음의 빛이 도무지 아닌것 같아 보이는 죄인들에게까지 닿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 없는 복음을 내 편견과 시각으로 몇몇 사람들을 정죄하며 제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듯이 복음과 은혜의 진리를 나에게 편하고 익숙한 종교 형식과 종교생활에 맞춰 넣으려는 모습은 없습니까?
3.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