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9월 9일(토) 새벽기도
본문: 잠언 18:18-24
<본문>
18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22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23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해설>
잠언이 말씀하는 지혜는 하나님 경외입니다. 우리는 이 잠언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의 모습, 곧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곳인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잠언은 미련한 자들의 세상도 보여줍니다. 겉모습이 아닌 진짜 감춰진 모습을 밝히 보여줍니다.
18절은 제비 뽑는 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성도 사이에 시시비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의견이 팽팽합니다. 서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주신 해결책이 제비입니다.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게 합니다. 이 뜻에 순종합니다. 다툼이 그칩니다. 의가 세워지고 화평케 됩니다.
19절은 조금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노엽게 한 형제”는 “내가 노엽게 만든 형제”를 말합니다. 상처받은 형제입니다. 타인이 아닙니다. 믿음의 형제입니다. 이런 경우는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을 굳게 닫은 견고한 성과 같아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잠언은 우리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러한 문제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제비뽑기! 곧 여호와 경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 회복의 핵심은 하나님 경외입니다.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으로는 “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옳음,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갈 5:13-1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싸움의 진짜 원인인 죄를 이겨야 합니다. 자기 의를 주장하므로 다툼을 해결하려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건 세상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과 이웃 모두의 의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의”를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곳에 참된 화평이 있습니다. 죄악을 이기고, 의와 평화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성도가 배워야 하는 지혜가 바로 “말”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입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선한 말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합니다. 반대로 나쁜 말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다른 사람을 아프게 만듭니다. 심지어 21절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생명을 누리기도 하고 죽음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성도가 교회 안에서 주먹으로 싸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모든 시시비비와 노여움과 상처의 원인은 “말”입니다. 말에서 모든 다툼이 시작합니다. 교회 안에서 뒷말하고 수군거리고 비방하는 말은 결코 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세상입니다! 교회 안에서 8절 같은 경우는 있어서는 안됩니다. 13절 말씀대로 사연을 듣기 전에 권면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데서 오는 미련한 자의 입술은 6절 말씀대로 다툼을 일으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야고보 선생의 권면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약 3장입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22-24절은 아내와의 관계, 부자와 가난한 자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잠언입니다. 아내는 언약적인 관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언약적인 관계는 가진 것을 주고 받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성도는 다 언약적인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은 가난한 자, 부한 자, 친구 관계를 통해 유익을 누리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 관계의 중심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관계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가난과 부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언약관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한 자는 기꺼이 가난한 자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도움을 구할 때 뿐만 아니라 헌금을 통해 교회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합니다. 친구 관계도 넘어서야 합니다. 자기만 좋아하는 사람과는 지낼 수 없습니다. 언약의 상인 성찬에서, 한 떡, 한 잔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는 한 몸입니다. 한 지체가 다른 지체를 향해 필요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약하니, 앞선 잠언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배려해야 합니다. 말을 조심하고, 자신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 교회 안에 하나님 나라가 나타날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열매들을 맛보며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 가운데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아주 작은 말에서 조차 형제를, 자매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모습이 우리 교회 안에 충만케 하사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교회 되게 하소서.
2. (주보 기도제목) 강단에서 바른 복음이 선포되게 하시고, 좋은 밭과 같은 마음으로 에배하는 주일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