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2(화)
잠언 19장 13-29절(구p.932)
<본문>
◎ 13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6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18 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19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22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24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25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으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26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27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28 망령된 증인은 정의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29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해설>
어제는 잠언 19장 말씀이 다루는 주제들 중 ‘가난’과 ‘부요함’을 바라보는 태도와 지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주제는 ‘징계’와 ‘책망’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들을 징계하라”라든지(18절), “거만한 자를 때리라”(25절) 등과 같이 누군가를 교육함에 있어서 엄한 태도를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명령들은 교육을 하는 자들, 교육을 행하는 주체들을 향한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령은 비단 교육을 하는 주체들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명령입니다.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20절) 등과 같은 말씀들은 교육과 양육을 받는 대상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이처럼 잠언 말씀은 교육의 주체들에게는 엄하게 교육할 것을 요구하며 교육을 받는 자들에게는 훈계, 책망, 권고 등을 달게 받을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잠언 말씀이 이러한 징계와 책망 등을 권하고 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본성상 바른 말씀을 듣고 수용하며, 그것을 따르고 순종하며 사는 것에 부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본성상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첫 인류 아담이 타락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동기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창 3:5). 스스로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스스로가 선악의 기준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창 3:22).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범죄하여 타락한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성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태도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른 말, 맞는 말, 본인도 따르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것들조차도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따르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들이 짜증 섞인 말투로 하는 말들이 있는데요.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 엄마 아빠가 공부하라는 말을 하면 공부하기가 싫다든지, 밤늦게 까지 스마트폰만 하고 있지 않는 것, 늦잠 자지 않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 집에서 폰이나 컴퓨터 게임만 하지 않고, 운동도 하고 움직여야 하는 것, 다 알겠는데, 그걸 부모를 포함해서, 다른 누군가가 말하거나 시키면 하기 싫고, 듣기 싫다고들 합니다. 이처럼 정당한 요구와 명령조차도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말들을 따르거나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죄인이 지닌 전형적인 태도입니다.
이것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모든 자녀들을 죄악이 찌들어 있는 죄인으로 취급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그렇게 반항하고 저항하는 태도, 다른 사람의 지도와 다스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 그러한 모습을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분별한 채벌과 징계를 정당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나친 관용 또한 결코 정당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 특히 누군가를 지도하거나 가르치고 인도하는 입장에 있는 자들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죄성을 지닌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인의 가장 강한 특징은 우리 바깥에 있는 존재의 지도와 다스림, 특히 정당하고 바른 지도와 권면조차도 거부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런 죄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발휘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징계와 채벌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어제 ‘가난과 부요함’을 살필 때도 그러했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징계 자체’, ‘채벌 자체’가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죄인의 본성’이 어떠한지, 그 죄인의 본성이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나타나는지 잘 이해하고 그것을 정당하게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최근 미디어에 노출되고 있는 자녀양육, 자녀 교육 프로그램이라든지, 상담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인간 본성에 대해 너무나도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교육과 양육의 목표가 인간 안에 있는 자질과 능력을 잘 발휘하고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귀결 되는 것을 봅니다. 책망하기보다는 어르고 달래야 하고, 징계와 채벌은 허용되지 않으며, 낙담하고 좌절할 상황을 마주치지 않도록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교육은 그 나름의 목표를 이루는 일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 의사를 개진하는데 분명하고, 자신의 기호와 성향을 막힘없이 말하고, 자기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사람들을 많이 키워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육과 양육의 목표와 목적은 인간의 가능성을 긍정하여 그 잠재력을 발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가 되도록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도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 영혼을 지키는 자”이며(16절)“사람의 많은 계획이 아니라,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선다”(21절)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자아실현을 이루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양육과 교육의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 하나님의 권고와 훈계를 듣는 자, 곧 ‘청종’하는 자로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듣고 순종하는 마음, 이것은 그저 차분하고 얌전한 사람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마음이 아닙니다. 듣고 순종하는 마음,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로 우리 안에 있는 죄 된 본성이 극복되어야만 주어지는 모습입니다. 말씀을 따라 이루어지는 책망과 징계는 죄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지팡이 이지만, 말씀을 따르지 않는 관용은 죄인이 멸망의 불길에 사로잡히도록 하는 부채질이 될 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주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훈계와 징계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전에, 우리 스스로가 먼저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고와 훈계를 달게 받는 마음을 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리에 나아오도록 하는 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2. 우리가 먼저 주의 말씀과 훈계를 듣고 순종하는 자리에 기꺼이 서는 자 되도록.
2. [주보] 여러 가지 문제(경제적, 관계적, 영적)로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회복과 도움의 손길이 더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