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3월 26일(화)
마가복음
14:66-15:5 (신약 82)
<본문>
66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해설>
예수님께서는 불법과 거짓으로 가득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 재판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를 위해 침묵으로 순종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재판을 멀리서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입니다(14:54). 베드로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침묵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고, 또 진리를 말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로서 행하시는 그분의 고백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14:30). 눈앞에 찾아온 죽음의 위협을 이길 힘이 베드로에게는 없었습니다. 자신을 알아본 대제사장의 여종 앞에서(68절), 거기에 모여 있던 무리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70절). 요한복음은 그 여종이 베드로에게 귀가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고 말씀합니다(요18:26). 심지어 그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까지 부인했습니다(71절).
막14: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14:31)라고 말했던
베드로, 그리고 함께 고백했던 제자들. 인간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모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은 도망쳤고, 예수님을 멀리서 지켜보던 베드로는 부인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부인한 것은 베드로이나 모든 제자가 베드로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가 우리와 같이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됩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찾아 온다면 과연 우리는 어떨까요? 제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자들과 같이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 특히 베드로에게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매우 특별한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는,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째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곧 닭이
두번째 울었을 때.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자 베드로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기억나게 하심으로 고통스러운 죄를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이런 베드로를 보고 계셨다고 말씀합니다(눅22:61).
눅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눈빛으로 베드로를 바라보셨을까요? 원망과
경멸의 눈빛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움과
위로의 눈빛으로 바라보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연약한 베드로와 같은 우리를 위해 지금 이
일을 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용납하고 용서해 주시기 위해 지금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 부족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일이 완전하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납 받고,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이런 믿음은 예수님을 더 많이 붙들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많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더 많이, 더 자주, 언제나 예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제자들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과 달리 대제사장과 장로들, 서기관들 앞에서 우리의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앞에서는 우리의 왕이심을 인정하셨습니다(15:2).
막15: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대제사장은 빌라도
앞에서도 여러 가지 거짓말로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는 역시 침묵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빌라도는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왕으로 인정하신 것은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입니다. 스스로 죽음의 길을 자청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빌라도가 보고 듣기에도 예수님을 고발하는 자들의 고발이 거짓 투성이로 보였습니다.
막15: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막15:4 발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막15: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이시며, 왕이심을 인정하신 것은 우리를 대신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연약한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위협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심지어 십자가의 고통과 조롱,
죽임 당하신 분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의 고통과 조롱, 죽음 앞에서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이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기억하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 우리의 삶에서 감사로 예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이런 연약한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그리스도와 왕으로서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구원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을 주십니다. 더불어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기억하시며 우리를 위해 자기를 고백하십니다. 이 예수님 때문에 담대하게, 감사함으로 주어진 고난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1. <말씀을 기억하며> 죽음의 위협 앞에서 연약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말씀과 성령님을 주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와 왕으로 증거하시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2. <주보 기도제목> 세례와 입교를 받은 교우들에게 확고한 믿음을 주셔서
분명한 신앙고백에 이르게 하소서.